고조선 국가 형성 시기의 동호가 고조선이 아니라는 주장은 사이비 역사다
☞ "고조선 국가 형성 시기"의 동호가 고조선이 아니라는 주장은 사이비 역사다
■ "고조선 국가 형성 시기"의 고조선 영토 내용(아틀라스 한국사 내용 중심)
※주) 아틀라스 한국사는 송호정 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11명이 참여하여 집필한 한국사
1) 기원전 3~4세기에
중국에서는 고조선을 조선후국(朝鮮侯國)으로 불렸는데
고조선 스스로 왕(王) 이라 하고 전국시대 연나라를 공격하려 했으며,
연은 장군 진개를 파견하여 [고조선의] 서쪽 지방을 침공하고 2천여리의 땅을 빼앗아
만변한에 이르는 지역을 경계로 삼아, (상곡,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에 군을 설치했다
(전국시대 연나라 요동군의 동쪽에 고조선이 붙어 있다)
※주) 제시한 "아틀라스 한국사 지도" 참조
2) 기원전 2세기 초에
연나라 세력의 진출로 요동군(요동지역) 고조선 주민이 서북한 지역으로 이동하여
세로운 세력에 의한 고조선 정권의 교체가 이루어 지는데 위만조선이다
3) 기년전 108년에
고조선(위만조선)이 중개무역으로 한(漢) 나라를 자극하여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한4군(낙랑, 현도, 임둔, 진번)을 설치했다
※주) 제시한 "아틀라스 한국사 지도" 참조
■ 동호가 고조선이 아니라는 주장은 사이비 역사다
1) 전국시대 연나라 장군 진개가 고조선 서쪽지역을 빼앗아 설치한
전국시대 연나라 요동군(요동 지역)의 동쪽에 고조선인 기준(준왕)조선이 붙어 있다
※주) 제시한 "아틀라스 한국사 지도" 참조
2) 고조선(위만조선)을 멸망시킨 한무제 시기의
한나라 요동군(요동 지역)의 동쪽에 고조선인 위만조선이 붙어 있다
※주) 제시한 "아틀라스 한국사 지도" 참조
3) "정사 삼국지 한전의 위략"에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 서쪽 2천리를 빼앗다고 했으나
(상곡,어양, 우북평) 요서군, 요동군을 설치했다는 내용은 없다
"사마천 사기 흉노열전"에
연나라 장수 진개가 동호를 습격해 1천리를 빼앗아
상곡,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에 군을 설치하고,
북쪽에 연장성(80년 후에 진시황의 만리 장성이 됨)을 쌓아 고조선(호)을 방어 했다고 한다
4)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여 종합하면
-. "아틀라스 한국사"에서 설명된
고조선 서쪽 2천리에 설치한 상곡군,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은
-. "사마천사기 흉노열전"의
동호 1천리에 설치한 상곡군,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이다
("정사 삼국지 한전의 위략"에는
고조선 서쪽 2천리에 상곡군,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을 설치한 내용이 없다)
따라서
(1) "사마천사기 흉노열전"의 동호가
"정사 삼국지 한전의 위략"과 "아틀라스 한국사"의 고조선이다
(2) "흉노열전"의 1천리가 "한전 위략"에서 2천리로 표현된 것이다
(1천 5백리 정도의 거리는
대략 1천리로 표현할 수 있고, 대략 2천리로 표현할 수 있다)
(3) "아틀라스 한국사"의
상곡,어양,우북평, 요서,요동은 연나라 장성(만리장성) 남쪽에 있지 않고
상곡에서 요동까지의 거리는 대략 3천여리 이상이니, 거리가 1~2천리 부풀려 그려져 있다
☞ 『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한(韓) : 위략(魏略) 』
전국시대 연나라는 장군 진개를 파견하여 [고조선의] 서쪽 지방을 침공하고
2천여리의 땅을 빼앗아 만변한에 이르는 지역을 경계로 삼았다.
[원문] 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 取地二千餘里, 至滿番汗 爲界.
☞ 『사마천 사기(史記) 卷百十 「흉노열전(匈奴列傳)」』
그 후 연나라의 명장 진개가 호(동호, 고조선)에 인질로 가 있으면서 그들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진개는)연나라로 돌아온 후, 군대를 이끌고 동호를 습격해 패주시켰으며,
이때 동호(고조선)은 1천여 리나 물러갔다
연나라 역시 조양(造陽)에서 양평(襄平)에 이르는 지역에 장성을 쌓았다.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에 군을 설치하여 호(동호, 고조선)을 방어했다.
[원문] 其後燕有賢將秦開, 為質於胡, 胡甚信之. 歸而襲破走東胡, 東胡卻千餘里.
燕亦筑長城, 自造陽至襄平. 置上谷, 漁陽, 右北平, 遼西, 遼東郡以拒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