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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본부여를 계승한 대륙 백제역사 복원은 1m 천자급 왕궁 초석 확인으로 가능합니다

 

     (1) 1m 기둥 초석은 천자급 왕궁 초석입니다

           춘천 중도는 기둥 자리마다 깊게 파고 돌과 점토를 채운 적심(積心) 구조와 1m 천자급 기둥 초석의 발생지

 

     (2) '예기 명당위(禮記 明堂位)'에

          "천자의 묘당(정전과 종묘)는 기단의 높이가 9척에 달해야 한다.

           겹지붕으로 덮고, 기둥은 매끄럽게 깎아 멀리까지 그 위엄이 닿게해야 한다

          (天子之廟 檻隩九尺. 複廟蓋屋, 刮楹達鄕)' 고 기록되어 있으니

          1m 기둥 초석이어야 가능하니, 1m 기둥 초석은 천자급의 왕궁 초석입니다

 

      (3) 중국 고대왕조 하/은/주 나라 군주는 왕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천자가 아니었고
           하남성과 섬서성의 왕궁터에서 진시황 이전의 1m 기둥 초석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BC 14세기 춘천 중도(백악산 아사달)에서 시작된 1m 천자급 왕궁 초석 전파 경로

 

1) 춘천 중도(백악산 아사달)에서 하북성(막조선)으로 전파

   1m 천자급 왕궁 초석은 BC 14세기 춘천 중도(백악산 아사달)에서

   BC 10세기 북경 유리하 하층 유적(막조선)으로 전파되고 BC 5세기 하북성 역현 장당경이 계승했습니다 

 

2) 춘천 중도(백악산 아사달)에서 한반도 남부로 전파

   1m 천자급 왕궁 초석은 BC 3세기 초 대홍수로 춘천 중도가 퇴적층으로 함몰되자

    중도 세력이 한반도 남부로 이동하여, AD 4세기 중반 익산 왕궁리(익산부여)와 경주 월성(황금 신라)가 계승했습니다

 

3) 하북성 역현 장단경에서 경기도 하남시 교산동의 한강 부여가 계승

   1m 천자급 왕궁 초석 BC 3세기 초 대홍수로 역현 장당경이 퇴적층으로 함몰되자

   역현 중심세력이 요서, 요동을 거쳐서, BC 2세기 중반 경기도 하남시 교산동의 한강 부여가 계승했습니다

 

4) 하북성 역현 장단경에서 하북성 중부를 거쳐서 영산강 지역으로 비류백제 계승

   1m 천자급 왕궁 초석은 북부여 졸본부여 적통을 이은 비류백제가 계승했습니다

    역현 -> 하간시(BC 1세기 말 소서노 왕성)-> 창주시 남피현(AD 2세기 위구태 부여 왕성)

     -> 영산강 나주 복암리 고성(AD 3세기 중반 비류백제 의려왕 왕성)

 

5) 영산강 복암리 비류백제에서 산동성 남부 평읍과 비성(사비성)으로 전파

   1m 천자급 왕궁 초석은 비류계인 무령왕이 AD 5세기 초에 백제 왕이 되고

   성왕이 AD 5세기 중반 산동성 임기시 평읍현과 비현(시비성)으로 천도하여 남부여로 개칭하면서 계승됩니다

  

 

 왕궁 기둥 기초 조성방식에 따른 중국 왕조와 동이족의 기술의 차이

 

      (1) 중국 왕조의 왕궁 기둥 기초 조성 방식 : 지상 통다짐 기반의 굴립주/지상 초석 방식

      (2) 동이족 국가의 왕궁 기둥 기초 조성방식 : 기둥 전용 지하판축 후 초석(지하/지상) 방식

 

1) 중국 왕조의 왕궁 기둥 조성방식 : 통다짐 기반의 굴립주/지상 초석 방식

     ※주) 진시황이 함양성을 건설한 BC 220년  이전에는

              1m 기둥 초석이 있는 천자급 왕성이 하남성과 섬서성에는 없었습니다

 

    (1) 진시황 이전(하 ·상·주·전국시대 하남성과 섬서성): [통다짐 후 굴립주]

          하남성(은허 등)과 섬서성(풍경·호경 등)의 중국 왕궁은 기단 전체를 층층이 다지는 통다짐(夯土台基)을 완성한 후,

          기둥 굵기에 맞춘 좁은 구멍을 파서 기둥을 직접 박는 굴립주(주동) 방식이 주류였습니다.

 

    (2) 진시황의 함양궁과 한나라 낙양성: [통다짐 후 지상 기둥 초석]

         진나라 함양궁과 이후 한나라 낙양성 등은 거대 기단을 통다짐한 상면에 돌을 놓는 지상 초석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2) 동이족 국가의 왕궁 기둥 기초 조성방식: 기둥 전용 지하판축 후 초석(지하/지상) 방식

      ※주) 1m 기둥 적심/초석은 천자급 왕성에 적용되는 규격으로
                하북성과 한반도에서 확인되는 1m 왕궁 초석은 독립적인 천자국 왕성으로 봐야 합니다   

    

    (1-1) 춘천 중도 유적과 유리하 하층 유적의 1m 기둥 적심 구조 -> BC 14~ BC 10세기

         중도 유적의 BC 14세기 ~ 12세기 대형 건물지에서는

기둥 자리마다 깊게 파고 돌과 점토를 채운 적심(積心) 구조와 1m 천자급 기둥 초석 나타나고

          춘천 중도 기술은 BC 10~9세기 북경 유리하 하층의 1m급 기둥 적심구조와 1m 기둥 초석으로 전파됩니다

         춘천 중도는 백악산 아사달 도성이고, 북경 유리하 하층 유적은 막조선의 도성입니다

   

    (1-2) 하북성 역현 연하도(장당경 아사달) -> BC 5~ 3세기 초

         역현의 중역하와 북역하 사이의  노태(老台)·무양대 기단부 지하 1m급 기둥 기초(적석/편석 판축)은
         장당경 아사달 도성입니다

         지하 '주동'으로 설명하지만, 적심구조의 지상 기둥 초석이 퇴적물에 묻쳤습니다

 

    (2-1) 익산 왕궁리(익산부여 도성) -> AD 3세기 중반 ~ AD 5세기 말

        1m 구덩이 내 10cm 단위 층층이 판축한 토심적심(土深積心) 공법과 지름 1m급 거대 통돌 초석으로

         춘천 중도세력이 남하해서 세운 익산부여 도성입니다

 

    (2-2) 경주 월성(황금/금관 신라 도성) -> AD 3세기 중반 ~ AD 5세기 말

          월성 기초 하부의 거대 적석 판축 및 1m급 기초 시설과 지름 1m급 거대 통돌 초석으로

          춘천 중도세력이 남하해서 경주의 석씨 신라를 대체한 황금/금관 신라 도성입니다

 

    (3) 한반도 하남시 교산동(한강 부여 도성) -> BC 2세기 중반 ~ AD 4세기 중반

          지름 1m급 거대 통돌 초석 및 하부 심초(深礎)형 토심적심(土深積心)으로 역현 장당경 세력이 이동한 한강부여 도성입니다

          고려시대 객사 초석으로 설명하지만 1m 규격의 기둥 초석은 천자급 왕궁 초석입니다

  

    (4-1) 하북성 하간시(소서노 왕국) -> BC 1세기 중반 ~ AD 1세기

          지하 약 5M 문화층에서 발견된 1m급 석조 초석 및 지하 판축은

          주몽 사망 후에 졸본부여(고구려)를 떠나서 건국한 소서노 왕국의 도성입니다

 

    (4-2) 창주시 남피현(위구태 부여의 비류백제 도성) -> AD 2세기 ~ AD 3 세기

          왕궁급 건물지 하부 1m급 석조 주초석 및 다중 판축 기초로, 후한서 동이열전의 부여 위구태의 비류백제 도성입니다

 

    (4-5) 나주 복암리 고성(부여 의려왕의 영산강/열도 지역 비류백제 도성) -> AD 3세기 중반 ~ 5세기 말

         지름 1m급 왕성 초석 및 하부 36개 개별 흙다짐(지하 판축) 기초로

         창주시 남피현에서 부여(비류백제) 의려왕(백제 고이왕)이 영산강 지역으로 비류백제 도성을 옮긴 겁니다

         고려시대 관청 초석으로 설명하지만  1m 규격의 기둥 초석은 천자급 왕궁 초석입니다

 

    (5) 산동성 남부 임기시 평읍현/비현(백제 사비성) -> AD 6세기 중반 ~ 7세기 중반

         지름 1m급 통돌의 정밀 치석 초석 및 하부 고밀도 절구다짐 판축으로 성왕이 천도한 남부여의 도성인 사비성입니다

         ※주) 사비는 사수와 비수 사이로, 산동성 사수의 상류 평읍현과 비수 상류의 비현이 백제 사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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