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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조선에 관한 문헌내용

 

1. 『삼국유사 권1 제1 기이편』 고조선(古朝鮮) 왕검조선(王儉朝鮮)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였다 나라를 개창하여 조선(朝鮮)이라 했으니 고[高-요임금-]와 같은 시대이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庶子)인 환웅(桓雄)이 천하(天下)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人間)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세 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웅(雄)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정상 신단수(神壇樹;神檀樹) 밑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하고 이에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하였다.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악(善惡) 등 무릇 인간의 삼백육십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이때에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신(神) 환웅(雄)에게 기도하되 화(化)하여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이에 신 환웅은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百日)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모습이 될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받아서 먹어, 기(忌)한지 삼칠일(三七日)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금기하지 못해서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매양 단수(壇樹;檀樹) 아래서 잉태하기를 빌었다.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녀와 혼인하였다. [웅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壇君王儉;檀君王儉)이라 하였다. 

당(唐)의 고(高)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庚寅)

【당의 요(堯)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戊辰)이니 50년이 정사(丁巳)년이고 경인년은 25년이다. 사실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으로  평양성(平壤城) 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하였다. 또 도읍을 백악산아사달에 옮겼는데,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의 호왕(虎王-武王-)이 즉위한 기묘(己卯)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으니 수(壽)가 1,908세다.”라고 하였다.

 

2. 『제왕운기 권 하』 

처음에 누가 나라를 세워 세상을 열었는가? 석제(釋帝)의 자손으로 이름은 단군(檀君)이라네.

【본기(本紀)에 이르기를, ‘상제(上帝) 환인(桓因)에게 서자(庶子)가 있는데 환웅(桓雄)이라 하였다. 〈환인이 환웅에게〉 일러 말하기를, “〈땅으로〉 내려가 삼위태백(三危太白)에 이르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겠는가[弘益人間]?” 라고 하였으므로 환웅은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고 귀신 3,000명을 데리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왔으니, 이분을 일러 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손녀(孫女)에게 약을 먹여 사람의 몸이 되게 하고 단수신(檀樹神)과 혼인하게 하여 남자 아이를 낳게 하니, 이름하여 단군이라 하였다. 조선의 영역에 자리잡고 왕이 되었다. 그리하여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북 옥저(沃沮), 동북 부여(夫餘), 예(濊)와 맥(貊)이 모두 단군의 후손이었다. 1,038년을 다스리다가 아사달(阿斯達) 산에 들어가서 산신이 되었으니, 〈이는 단군이〉 죽지 않은 까닭이다.] 요(堯)임금과 함께 무진년에 나라를 세워 순(舜) 임금 때를 지나 하(夏)나라 때까지 왕위에 계셨도다. 은(殷)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년에 아사달 산으로 들어가 산신이 되었네.】

나라를 다스린 지가 1,028년으로, 어찌 변화시켜 환인께 전할 것이 없었겠는가? 그 뒤 164년 만에 어진 사람이 다시 군신(君臣)관계를 다시 열었도다.

 

3. 『삼국사기 권 제17 고구려본기 제5  >   동천왕(東川王)』
21년(AD 247) 봄 2월에 왕이 환도성이 전란을 겪어 다시 도읍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하여, 평양성(平壤城)을 쌓고 백성과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옮겼다. 
평양은 본래 선인(仙人) 왕검(王儉, 단군왕검)의 땅이다. 다른 기록에는 “왕이 되어 왕험(王險)에 도읍하였다.”라고 하였다.

 

■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문헌 내용 설명

 

1. 환인의 환국이 있었다

    환인의 서자 환웅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에 내려와 신시(배달국)를 열었으니

    황웅이 거느린 무리 삼천은 환국의 사람들이다

 

2. 환웅의 신시(배달국)이 있었다
     환웅천왕는 신시(배달국)을 건설한 초대 천왕이다(신시배달국 천왕으로는 치우천왕도 있다)

    환인의 서자 환웅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에 내려와 신시(배달국)를 열었다

    곰이 여자로 변할 수 없으니...

    곰을 토템으로하는 여인이 100일의 수도정진를 통해 사람의 도리를 알게되어 사람다워졌다는 표현이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인 것이다 사람답지 않은 사람을  지금도 짐승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3. 단군조선은 아사달(평양성), 백악산 아사달, 장당경(대부여)으로 도읍지가 변경되었다

    편양 아사달 단군조선은 1028년이고, 백악산 아사달 단군조선은 880년으로 보이고,

    장당경(대부여) 기간은 알수 없지만 북애 범장(~ AD1395)의 북부여기에 따르면 188년이다

 

    -. 단군조선(평양아사달 + 백악산 아사달) 기간은 삼국유사의 1908년이다

        (장당경 기간은 '대부여'였으니 제외하였다)

    -. 평양 아사달 단군조선 기간은 제왕운기의 1028년이다

        (단군조선 건국 BC 2333년 - 주무왕 즉위 BC 1046 = 1287년이니 삼국유사의 1500은 오기로 본다)

    -. 백악산 아사달 단군조선 기간은 880년이다

         (단군조선 기간 1908년 - 평양 아사달 단군조선 기간 1028년 = 백악산 아사달 단군조선 기간 880년,

          장당경은 '대부여'였으니  단군조선 존속기간에서 제외하였다)

    -. 장당경(대부여) 기간은 북애 범장(~ AD1395)의 북부여기에 따르면 188년이다

         (장당경 천도 BC 425년 - 아사달 산으로 들어간 BC 237년 = 188년)

    

■ 요하문명의 고고학 유물로 밝혀진 동이족의 고대국가 위치

 

◐ 청동기를 만드는 거푸집과 청동 제품을 만들면서 생긴 찌꺼기

    홍산문화(BC 4500 ~ BC 3000)의 오한기 서대 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청동기가 BC 4000년 경에 이미 만들어져서 사용되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섬서성 북쪽 내몽고자치주 쮸카이꼬우 유적[ 伊克昭盟 朱開溝 遺蹟 ]에서

    BC 2000년기 초∼중엽의 북방식 청동검(청동단검)이 출토되었다

 

1) 환인의 환국 위치는 고고학 관점에서 흥융화 문화(BC 6200 ~ BC 5200) 유적

    해자로 둘려쌓은 집단거주지(50~100가구)가 많은 장소에서 발견되었고,

    한반도 신석기 대표적인 토기인 빗살무늬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세계 최초 옥귀걸이(옥결)와 옥기들이 발견되었기에

    흥융화 문화 유적을 환인의 환국으로 추정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 주거지를 일정한 형태로 배치하고 중앙 광장에 집회소와 매장장(무덤)를 조성한 계획적인 취락지가 발견되었다

    -. 기장과 조를 재배(밭농사)하면서 정착 생활을 했다

    -. 토광적석묘와  석곽적석묘가 나타난다

 

    ※주) 사해문화(BC5600 ~ BC 4000)에서 돌로 쌓은 용 형상의 석소룡(중화제일용)이 발견되었고

             부하문화(BC 5200 ~ BC 5000)에서 복골(卜骨)이 출토되었으며

             조보구 문화(BC 5000 ~ BC 4400)에서 봉황 형상토기가 출토되었다

 

2) 환웅의 신시배달국 위치는 고고학 관점에서 홍산 문화(BC 4500 ~ BC 3000) 유적 

     수도정진하는 웅녀상(여신상)이 출토되었기에 홍산문화를 신시배달국으로 추정할 수 있다

 

     -. 국가의 존재를 나타내는 대규모의 총묘단 시설(적석묘, 웅녀상인 여신상, 제천단)이 발견되었다

     -. 여신상과 더불어 곰의 형상인 옥웅룡이 출토되었다

     -. 청동 주조 유물이 출토되었다(BC 3500 ~ BC3000 년의 후기 홍산문화는 동석병용시대)

 

    ◐ 청동기를 만드는 거푸집과 청동 제품을 만들면서 생긴 찌꺼기

         홍산문화(BC 4500 ~ BC 3000)의 오한기 서대 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청동기가 BC 4000년 경에 이미 만들어져서 사용되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1) 전기 신시배달국은 한웅천왕 시대로 홍산문화(BC 4500 ~ BC 3000) 유적이다

         -. 우하량 16지점에서 비파형 옥검이 출토되었다(BC 3500년 경 유물)

 

   (2) 후기 신시배달국은 치우천왕의 청구국으로 절강성 양저 문화(BC 3400 ~ BC 2300)와

         산동성의 후기 대문구 문화(BC3300 ~ BC 2500)유적이다

 

    ※주) 소하연 문화(BC 3000 ~ BC 2000)는 동석병용 시대다

3) 단군왕검의 평양 아사달 위치는 고고학 관점에서 하가점 하층 문화(BC 2300 ~ BC 1600) 유적  

    고조선 대표 유물인 비파형 동검의 발생지이고 고구려 석성의 특징인 치(雉)가 있는 석성을 쌓은

     하가점 하층 문화를 단군왕검의 평양 아사달 단군조선으로 추정할 수 있다

 

     -. 고조선의 대표 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었다

     -. 치(雉)가 있는 석성이 발견되었다(치는 고구려 석성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 복골(卜骨)이 출토되었다

     -. 하가점 하층 문화는 청동기 시대 유적이다

 

      ※주) 섬서성 북쪽 내몽고자치주 쮸카이꼬우 유적[ 伊克昭盟 朱開溝 遺蹟 ]에서

              BC 2000년기 초∼중엽의 북방식 청동검(청동단검)이 출토되었다

 

    ① 사막 막의 막조선 유적, 사막초원지대 말을타는 대삼한의 마한 유적

         섬서성 북부 유림시 지역의 신목시(神木市) 석묘( 石峁,시마오) 유적(BC 2300 ~ BC 1800) 

    ② 진조선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번조선(대삼한의 번한) 유적

         산동 용산 문화 유적(BC 2500 ~ BC 2000)

  

     ※주)  『한겨레 신문:

              "하가점문화의 실체는 무엇인가?"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03842.html
              ' 하가점 상하층 문화는 60년 츠펑시 하가점촌 유적의 상·하층을 발굴하면서 드러난 청동기 문화로,

                고대 요하지역과 고조선의 관계를 푸는 또다른 열쇠다.

                고조선 문화의 물증인 비파형동검과 고구려계 성곽·주거지 등과 연결되는 취락, 성터 등이 상당수 나와

                국내 주류학계도 관심이 높다.' [유적: 적봉시 오한기 --> 성자산산성, 삼좌점 석성]

 

      ※주) 하가점 하층 문화를 계승한 위영자 문화(BC 1500 ~ BC 1100)는 청동기 시대다

               하가점 상층문화(BC 1000 ~ BC 600)는 북방식 동검 문화다(비파형 동검이 아님)               

 

4) 백악산 아사달 단군조선 위치는 고고학 관점에서 십이대영자 문화의 동대장자 유형(BC 1000 ~ BC 450) 유적

    고조선 대표 유물인 비파형 동검과 다뉴조문경(청동거울)이 대량으로 출토되었고 세형동검의 발생지이니

    (중세형동검 출토) 십이대연자문화의 동대장자 유형을 백악산 아사달 단군조선으로 추정할 수 있다

 

     -. 고조선 대표유물인 비파형동검과 다뉴조문경(청동거울)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 비파형동검에서 세형동검으로 넘어가는 중간단계의 중세형동검이 출토되었다

 

    ① 사막 막의 막조선, 사막초원지대 말을타는 대삼한의 마한 산융(山戎), 적(翟)
         ※주1) 산융(山戎, 메 산, 병장기 융) : 태행산맥에 있는 병장기를 사용하는 고조선,
         ※주2) 적(翟, 꿩 적) : 꿩 깃으로 만든 조우관을 쓰는 고조선
     ② 진조선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번조선(대삼한의 번한)은 관자에 등장하는 발조선(發朝鮮)

 

5) 장당경 단군조선(대부여) 위치는 고고학관점에서 연하도 문화(BC 450 ~ BC 250) 유적

     고조선 화폐인 명도전이 출토되고, 명도전 거푸집이 주로 하북성 일대에서 발견되기에

     연하도 문하를 장당경 단군조선인 대부여로  추정할 수 있다

 

      -. 고조선 화페인 명도전이 출토되고 명도전 거푸집이 주로 하북성에 발견된다

      -. 연하도 문화가 중원문화 계통인 이유는

          춘추시대 말에 조나라와 연나라가 하북성 한단시 부근으로 진출하자

          하북성 석가장시(요서지역의 고죽국) 부근의 고조선 거수국이 하북성 중북부(하북성 보정시 부근)로 이동하여 

          국력이 약해진 백악산 아사달 단군조선을 이어 받아서 장당경 시대인 대부여를  열었다

 

      ※주) BC 250년 경에 해모수가 북경부근에 북부여를 건국했는데

              대부여 (장당경) 북쪽이니 북부여로 했다고 본다
              (북애 범장의 북부여기에 기록된 북부여 시대는 BC 239 ~ BC 86년이다)

 

       ① 장당경 단군조선(대부여)의 진조선은 흉노열전의 연나라 장성과 관련하여 등장하는 호(胡)
            ※주)
 호(胡,구레나룻 수염) : 구레나룻 수염이 있는 고조선 사람(고대 중국인들은 염소 수염)

       ② 사막 막의 막조선, 사막초원지대 말을타는 대삼한의 마한 임호(林胡), 누번(樓煩)

       ③ 진조선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번조선(대삼한의 번한) 예맥조선(穢貊朝鮮)
            ※주) 흉노열전의 연나라 장수 진개에게 빼앗긴 동호(東胡) 땅 1천여리는
                    1) 하북성 호타하 남쪽으로 예맥조선의 서쪽 영토였고,

                    2) 한비자 유도편에 등장하는 중산국이며,

                    3) 조선열전에 나타나는 진번조선이다

 

■  KBS 역사스페셜 – 만주대탐사, 제5의 문명 요하를 가다 / KBS 2009.8.29 방송
--> https://www.youtube.com/watch?v=zwxhFb4Z_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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