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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개토대왕이 정벌한 동부여는 서울 풍납토성의 '한강 부여'
--- [ 고고학 내용은 구글 Ai의 도움을 받아서 완성한 글입니다 ]---
■ 고국원왕이 도성을 요하 동쪽 요양시로 옮기고(평양 동쪽 황성)
350년 경에 대동강 평양에 있는 최리의 낙랑국을 정벌했다
1) 고국원왕이 AD 343년
하북성 진황도시의 평양에서 요하 동쪽 요양시의 황성(평양동황성)으로 도성을 옮겼다
(故國原王 十三年 秋七月 : 移居 平壤 東 黄城)
요하 동쪽 요양시 지역에는
AD 4세기 중반이후 왕릉급 석축 아치형 고구려 초기 벽화 고분이 조성되었으니
고국원왕이 천도한 평양동황성(평양 동쪽 황성)이 요양시다
2) 고국원왕이 요하 동쪽 요양시로 도성을 옮기고 4세기 중반(AD 350년 경)
대동강 평양의 '최리의 낙랑국'을 정벌해서 고구려가 한반도 평양까지 진출했다
(1) 대무신왕 시기인 AD 32년에 호동왕자에게 '최리의 낙랑국'이 멸망했다
최리가 낙랑군이 재건해서, 고국원왕에게 멸망했다는 기록은 없다
(2) '최리의 낙랑국'은
살수(난하) 남쪽인 하북성 당산시 란남현에 있다가 AD 32년 멸망했고
대동강 평양으로 이동해서 고국원왕에게 AD 350년경에 멸망한 것이다
(대무신왕 시기의 도성인 고구려 국내성이 북경 지역이기에
'최리의 낙랑국'은 국내성 동쪽, 낙랑군(형수시 무강현)의 동북쪽인 당산시 란남현에 있었다)
(3) '최리의 낙랑국'이 AD 32년에 하북성 당산시 란남현에서 대동강 평양으로 이동한 근거는
1세기 중반부터 등장하는 대동강 평양 왕릉급 이중아치형 전축고분은
당산시 란남현의
-. ‘대형 전돌 수평 쌓기’ ‘돔이 없는 순수 터널형 이중 아치’ 핵심공법을 적용했고
-. 금속 세공(투조 기법과 용봉 무늬의 설계도),전돌(문양과 서체)
토기(고온 환원염 기술과 타날문 규격) 유물이 동일하기에
하북성 당산시 란남현의 '최리의 낙랑국'이 대동강 평양으로 AD 32년에 이동한 것이다
(4) 대동강 평양의 왕릉급 이중아치형 전축고분이 4세기 중반부터 만들어 지지 않기에
AD 350년경에 고국원왕이 대동강 평양 '최리의 낙랑국'을 멸망시킨 것이다
■ 광개토대왕이 410년에 '한강 부여'를 멸망시키고(풍납토성)
고구려가 한반도 중부지역을 차지했다
1) 광개토대왕이 410년 멸망시킨 동부여는 풍납토성의 '한강 부여'다
(1) 광개토대왕비문 410년
광개토대왕이 직접 64개 성과 1400개 마을을 격파하고, 동부여를 멸망시켰다
(年庚戌 : 東夫餘舊是鄒牟王屬民中叛不貢 王躬率往討
軍到餘城而餘□國駭□□□□□□□. 凡所攻破 城 六十四 村 一千四百)
(2) 북부여, 졸본부여, 대소왕의 동부여, 갈사부여는 광개토대왕 4백년 전에 사라졌기에
광개토대왕 비문의 동부여는 풍납토성에 있는 한강 부여다
비류백제인 하북성 창주시 부여 서쪽에 있는 여현의 석가장시 부여(녹산부여)가 '서부여'이기에
비류백제인 창주시 부여 동쪽인 한반도 서울에 있으니 동부여로, 풍남토성의 '한강 부여'다
(장수왕에게 AD 475년 멸망한 개로왕의 한성 백제는 산동성 태안시에 있었다)
(3) 410년 경에 풍납토성이 파괴되고,대규모 불에 탄 흔적이 발견되었고
하남시 감일동의 왕릉급 전축(벽돌식) 평천장 고분이 410년 이후에 만들어 지지 않기에
AD 410년에 광개토대왕이 풍납토성의 '한강 부여'를 멸망시킨 것이다
2) 풍납토성이 파괴되자 '한강 부여'는 천안으로 이동했다가
494년 문자왕에게 항복하여 '한강 부여'는 사라졌다
(1)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의
문자왕 3년(494)에 항복한 부여는 천안의 '한강 부여' 잔존세력이다
(文咨王 三年 二月, 扶餘王及妻孥, 以國來降.)
(2) 494년에 등장하는 부여는
410년에 광개토대왕에게 멸망한 '한강 부여' 잔존세력일 수 밖에 없다
천안 화성리 유적에서
5세기 중반(450년 전후) 왕궁급 대형 건물지가 발견되었고
하남시 감일동 형식의 석축(돌) 평천장 고분에서 왕릉급 유물이 출토되었기에
5세기 초의 '한강 부여"가 천안으로 이동한 것이다
(4) 천안의 부여가 문자왕의 고구려에게 항복함으로써
고구려 횡혈식 석실묘와 고구려식 보류/성곽, 고구려식 토기/철제류 등이
5세기 말부터 천안, 청주, 대전지역에 고구려 유적과 유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3) 6백년 왕국의 풍납토성의 '한강 부여'는 진조선 세력(이동된 장단경 고조선)
(1) BC 2세기말 하남시 춘궁리 왕궁에서
AD 3세기 초에 풍남토성으로 도성을 옮겼고, 광개토대왕에게 AD 410년에 멸망하자
천안 화성리로 도성을 옮겨 유지하다가, AD 494년 문자왕에게 항복하여 사라졌다
(2) 장당경 고조선의 위치가 역현
하북성 역현의 왕궁초석과 하남시 춘궁리 왕궁초석이 1.5M의 천저급으로 하남시 춘궁리 일대의 왕궁의
건물 배치와 초석의 가공 수법 등
장단경 고조선의 도성인 역현의 왕궁과 동일한 방식이 적용되었으니 장단경의 최상위 집단이 이동된 것이다
삼국유사에서 ‘신선이 되었다’는 기록은 세력 전체의 대규모 이동을 의미한다.
BC 3세기 초 연나라 진개가 하북성 석가장시 지역의 중산국을 복속시키고 연 5군을 설치하자
이동을 시작하여 약 100~150년간 요서와 요동을 거쳐서 BC 2세기 말에 한반도 중부에 정착했다
(3) 하북성 역현의 장당경 고조선 이동의 고고학적 근거
>>> 하북성 역현 장단경의 최상위 집단이 고도의 기술자와 주력 집단을 데리고 이동
연나라 진개가 하북성 석가장시 지역의 중산국을 복속시키고 연 5군을 설치 하자
직사각형 전축 고분, 절구다짐 축석 공법, 경질 타날문 토기, 돌집(지상 노출형 석곽) 등
하북성 역현의 장당경 문화(속칭.연하도 문화)가 BC 3세기 초에 이동하여 BC 2세기 말에 한반도에 전파됨
>>> 장당경 문화(속칭.연하도 문하)의 전파 경로상 전파시기
하북성 역현(~BC 4세기 말)-->요서지역(BC 3세기~)-->요동지역(BC 2세기 초~)-->한반도 전역(BC 2세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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