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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석탈해 이사금의 출생국인 '다파나국'은 동옥저의 옥저성(진황도시 창려현)
1) 탈해이사금 출생국(삼국사기) : 양자강(고대 왜국) 동북 1천리의 '다파나국'
석탈해는 BC 5년에 다파나국 왕자로 태어나서
AD 57년에 가야를 거쳐 62세에 경주에서 신라 왕이 되었다
다파나국은 양자강 지역의 고대 왜국에서 동북 방향으로 1천리 거리에 있다
(脫解尼師今立. 時年六十二. 姓昔, 妃阿孝夫人. 脫解夲多婆那國所生也. 其國在倭國東北一千里.)
2) AD 56년에 고구려에게 멸망한 62세의 동옥저 왕 석탈해는 이동하여 경주에 '석씨 신라' 건국
고대 왜국(양자강)의 동북쪽 1천리 이상의 거리에 있으면서 AD 57년 경에 멸망한 왕국은
고구려에게 AD 56년에 영토를 빼앗긴 동옥저가 유일하다
고구려 태조대왕에게 정벌당한 동옥저 왕 석탈해는
바다를 이용해서 금관 가야를 거처, AD 57년 경주에 석씨 신라를 건국했다
(1) 대무신왕의 동진 정책
국내성 동쪽(북경지역 동쪽)의
동부여(준서시,천서현, 천안시, 노룡현 북부지역)를 AD 22년 정벌하여 연나부로 만들었고
동부여 동쪽에 갈사부여(노룡현 남부 유전각장진劉田各莊鎮)가 건국되었다
동부여 동쪽(준서시,천서현, 천안시, 노룡현 북부지역 동쪽) 의
지금의 갈석산인 고대 개마대산 부근의 개마국(옥저성, 창려현)을 AD 26년에 정벌하여 군현으로 삼았다
개마국 동북쪽(창려현 동북쪽)의
구다국(무녕현)이 AD 26년에 항복해 왔다
개마국 정벌 몇년 후에 호동 왕자를 옥저성(개마국)에 보내, 살수(난하) 남쪽의 낙랑국(란남현)을 정탐했고
낙랑국(란남현,낙정현)을 AD 35년에 항복시켰다
(2) 태조대왕의 AD56년 동옥저 정벌
AD 56년 태조대왕이 동옥저를 정벌하고 땅을 빼앗아 성읍으로 삼고, 살수(난하) 북쪽까지 차지했다
(太祖大王 四年, 秋七月, 伐東沃沮, 取其土地爲城邑. 拓境東至滄海, 南至薩水.)
(3) 석탈해 왕은 옥저성(창려현)을 떠나 AD57년 경주에 석씨 신라 건국
태조대왕이 동옥저(요서회랑)를 AD 56년 정벌하여 고구려가 영토를 차지하자
동옥저 왕인 옥저성(창려현)의 61세 석탈해가 바다를 통해 김해를 거쳐서 경주로 나라를 옮겼다
3) 경주의 석씨 신라가 AD 57년 동옥저의 옥저성(창려현)에서 이동한 고고학적 근거
경주에서 AD 1세기 후반부터 조성되는 왕릉급 목곽 고분(조양동 38호분, 덕천리 유적)과
경주에서 AD 1세기 후반부터 출토되는 고단조 철기 및 판상철부. 고온 와질토기(瓦質土器)는
진황도시 창려현(옥저성)의
-. 왕릉급 목곽고분의 구조가 완벽하게 일치하고
-. 고단조 철기 및 판상철부, 고온 와질토기(瓦質土器)와 재질/모양과 제작기술이 일치하기에
경주의 석씨 신라는 창려현(옥저성)의 세력이 이주하여 건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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