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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북성 중부의 부양하가 요수이고 하수인 근거는

 

1) 전국시대 『한비자(BC 280?∼BC 233) 유도』편에

계(薊)를 나라로 삼은 연소왕이 하수(河水)를 연나라 경계로 삼았다고 하니 계(薊) 근처에 하수(河水)가 있었다

2) 한나라 시대의 『염철론(BC 74~BC 49) 험고』에는

연나라가 요수(遼水)에 둘러 쌓였다

고 했으니 한비자 유도편의 하수가 염철론 험고의 요수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춘추전국 시대 하수(河水)가 황하 하류의 물길이 바뀌어 한나라 시대 요수(遼水)로 불리운 것으로 보이고

춘추전국 시대 하수(河水)가 흘렸던 흔적이 한단시, 형태시와 형수시로 흐르는 지금의 부양하(滏陽河)다

결론적으로

하북성 남부에서 중부로 태행산맥을 따라 흐르는 지금의 부양하(滏陽河)가 요수입니다

부양하가 한나라 시대 염철론 험고에서 말하는 요수(遼水)이고 춘추전국시대 한비자 유도편의 하수로 본다

 

■ 당태종이 요수를 건너 군영을 설치한 마수산의 위치는...

 

1)  하북성 북부지역은 고구려 영토였으니 고대 요동은 하북성 중부지역이다

     고대 요동과, 요서 그리고 고대 요수는 하북성 중부지역이니 마수산도 하북성 중부지역에서 찾아야 한다

 

2)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마수산은 요서군 유성현 서남쪽에 있다고 했다

 

☞ 『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 요서군(遼西郡)

유성현 : 마수산이 유성현 서남에 있다 [원문] 柳城: 馬首山在西南.

 

3) 645년 당태종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한 내용에 대해..

신당서 동이열전에는 당태종이 요수를 건너서 마수산 (馬首山, 말 머리 형태의 산)에 군영을 설치했다고 했는데

요수는 하북성 중부 부양하이기에 거록현에서 서쪽으로 요수를 건서서 융요현(隆堯縣)의 요산(堯山)에 군영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하북성 중부 형태시 융요현 요산(堯山)은 구글 위성지도에서 말머리 모양의 산(마수산, 馬首山)이다

 

☞ 『 신당서(新唐書) 동이열전(東夷列傳) 』

당태종은 요수를 건너자, 다리를 철거하여 군사들의 결의를 다지게 하였고

마수산(馬首山, 말 머리 형태의 산)에 군영을 설치했다
[원문] 帝度遼水, 徹杠彴, 堅士心, 營馬首山.

 

■ 하북성 중부 융요현(隆堯縣)의 요산(堯山)의 구글 위성 지도 캡쳐 이미지

    당태종이 군영을 설치한 말머리 모양의 산(마수산,馬首山) 화면 캡쳐 이미지

■ 당태종의 고구려 원정 공격로

--> https://blog.naver.com/tnrnfle/222695123136

 

 

  낙랑군 서쪽에 있었던 온조왕 백제의 부아악 위치

 

1) 하북성 북부의 고구려에서 비류와 온조가 남쪽으로 갔으니 하북성 중부 지역으로 간 것이다

2) 형수시의 낙랑군 서쪽에 온조왕의 백제가 있다고 했으니 하북성 중부 석가장시 지역이다,

3) 마수성(馬首城)은 마수산(馬首山, 말 머리 모양의 산)에 쌓은 성이고,

4) 한산(漢山) 부아악(負兒嶽)은 한나라에 있는 어린이를 업은 모양의 산을 나타내기에

    고대 요서지역인 하북성 중부 지역인 석가장시 부근에서 찾으면 된다

 

    ※주) 부아악(負兒嶽) : 업을 부(), 아이 아(兒), 높은 산 악(嶽)이니 아이를 업은 모양의 산

 

☞ 『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

    [BC 18년] 비류와 온조는 태자(고구려 유리왕)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오간(烏干)·마려(馬黎) 등 10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갔는데 백성들이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들은〕 드디어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가 살 만한 곳을 바라보았다

 

    [BC 8년] 가을 7월에 마수성(馬首城)을 쌓고 병산책(甁山柵)을 세웠다.

     이로 말미암아 낙랑군과의 우호를 잃게 되었다.

     ※주) 다루왕 3년(AD 30) 겨울 10월에 동부(東部)의 흘우(屹于)가 말갈과 마수산(馬首山) 서쪽에서

            싸워 이겼는데, 죽이고 사로잡은 자가 매우 많았다.

 

    [BC 6년] 여름 5월에 온조왕이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나라의 동쪽에는 낙랑(樂浪)이 있고,
 북쪽에는 말갈(靺鞨)이 있어 번갈아 우리 강역을 침공하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 국모께서 돌아가시고, 형세가 스스로 편안지가 않으니, 장차 반드시 도읍을 옮겨야겠다. 

    내가 어제 순행을 나가 한수의 남쪽을 보니, 땅이 기름지므로 마땅히 그곳에 도읍을 정하여

    오래도록 편안한 계책을 도모해야 하겠다.”

 

5) 하북성 중부 융요현(隆堯縣)의 아기를 업은 모양의 산(부아악,負兒嶽) 구글 위성 지도 캡쳐 이미지

    위치: 하북성 형태시 융효현 邢台天宇水泥有限公司

 

■ 정사 삼국지 위서동이전의 삼한(마한, 진한, 변한)의 위치


1) 정사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나오는 삼한의 위치는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와 붙어있고 사방4천리 쯤 된다' 고 했다 

    따라서
    남쪽이 바다인 한반도 남부는 삼한(마한, 진한, 변한)의 위치가 아닐 수 있다

 

    한민족의 선조인 동이족의 고대 활동 지역이 하북성,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 절강성 지역이었으니

    삼한이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 보다는

    중국 동부지역(산동성, 강소성, 안휘성)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합리적인 주장으로 보인다

    (왜는 절강성과 대만에 있었고...)

 
2) 고대 중국인들은 큰 강이나 큰 호수를 바다(海)라고 불렀다
   사기 집해에서 서광이 말하기를 해(海,바다)는 하(河,큰 강이나 큰 호수)의 의미로 사용한다(海一作河)

​ 

 

■ 일제 식민사관과 중국 동북공정의 핵심 내용이

위만조선이 북한 평양에 있었다는 사실과 맞지 않는 주장이다

그래서 위만조선이 북한 평양에 있었다면 낙랑군 등 한사군이 북한 땅에 있었다 주장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북한 땅이 중국 한나라 영토가 되는 중국 동북공정이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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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조선이 북한 평양에 있었다는 사실과 맞지 않는 주장인 근거는

북한 평양에 위만조선(낙랑군)이 있었다면 위만조선(낙랑군) 서쪽에 요동군이 있고 요동군 서쪽에 요서군이 있다고 했다

그럼 위만조선(낙랑군) 서쪽에 있다는 요동군과 요서군은

북한 평양 서쪽 서해바다 한가운데라고 아상한 주장이 되기 때문이다

사마천사기 조선열전에는

한나라가 진나라(전국시대 연나라) 요동군을

한나라 요동군과 진고공지(상하장)로 패수를 기준으로 나누어

너무 멀어 지키기 어려운 진고공지(상하장)은 내버려 두었는데

연나라 사람 위만이 요동군에서 동쪽 패수를 건너 진고공지(상하장)에 위만 조선을 세웠다고 했다

따라서

1) 위만이 요동군에서 동쪽 패수를 건너 진고공지(상하장)에 위만 조선을 세웠다고 했으니

위만조선(낙랑군)은 요동군 동쪽에 있습니다( 위만조선,낙랑군 서쪽에 요동군이 있었다)

2) 진고공지(상하장)이 너무 멀어 (연나라에서) 가까운 패수를 경계로 요동군의 동쪽 경계를 삼았으니

패수가 북한 대동강이라면 연나라 수도 계(북경으로 주장)에서

대동강은 너무 멀기에 북한 대동강은 패수가 될 수 없다

■ 후한서와 정사 삼국지 오환선비열전을

고구려 역사의 일부로 이해해야 고구려 초기 역사를 정확히 알수 있다.

1) 오환선비열전에는

선비는 고조선인 동호의 일파이고 오환(말갈)은 원래 고조선인 동호라고 나온다

2)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1대 추모왕이 오환인 말갈을 속민으로 삼았고

고구려 2대 유리왕이 선비를 속국으로 삼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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