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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풍납토성의 '한강 부여'(BC 2세기말~AD 5세기 말)는 진조선 세력(이동된 장단경 고조선) 

 

1) 서울 풍납토성의 토성 기저부는 BC 2세기 말에 큰 절구다짐 공법으로 변화가 확인되니 신규 세력이 등장한 것이다

 

    (1) 풍납토성 기저층 (BC 2세기 초~중순) 성벽의 가장 아래 바닥(기저부)에는
         뻘흙을 촘촘하고 정밀하게 깔고 고도의 절구다짐 공법(정밀 판축)으로 기초 지반이 확인된다.

         이는춘천중도(백악산 아사달)에서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최상위 집단이 남하하여

         한반도 중부에 새로운 도성을 건설한 시기로 탄소 연대 상한선(BC 199년 경)과 부합한다.

    (2) 풍납토성 하층 토루 (BC 2세기 말): 다져진 기저층 위에
          진흙과 모래를 교대로 쌓아 올린 큰 절구다짐 공법(대규모 중심 토루 축조)이 확인된다

          하북성 역현의 큰 절구다짐 공법으로 풍납토성의 거대한 뼈대를 완성한 시기로 탄소 연대가 BC 2세기 말에 해당된다

 

2) 410년 경에 풍납토성이 파괴되고,대규모 불에 탄 흔적이 발견되었고
    하남시 감일동의 왕릉급 전축(벽돌식) 평천장 고분이 410년 이후에 만들어 지지 않기에 
    광개토대왕비문의 동부여(한강부여) 멸망 시기와 일치한다

 

3) 천안 화성리 유적에서

          5세기 중반(450년 전후) 왕궁급 대형 건물지가 발견되었고
          하남시 감일동 형식의 석축(돌) 평천장 고분에서 왕릉급 유물이 출토되었기에
          5세기 초의 '한강 부여"가 천안으로 이동한 후에 문자명왕에게 AD 494년에 항복한 부여로 보인다

 

4) 6백년 왕국의 풍납토성의 '한강 부여'는 진조선세력(이동된 장단경 고조선)

 

    (1) BC 2세기말  하남시 춘궁리 왕궁에서
          AD 3세기 초에 풍남토성으로 도성을 옮겼고, 광개토대왕에게 AD 410년에 멸망하자

          천안 화성리로 도성을 옮겨 유지하다가, AD 494년 문자왕에게 항복하여 사라졌다

 

    (2) 장당경 고조선의 위치가 역현
          하북성 역현의 왕궁초석과 
 하남시 춘궁리 왕궁초석이 1.5M의 천저급으로 하남시 춘궁리 일대의 왕궁

          건물 배치와 초석의 가공 수법 등

          장단경 고조선의 도성인 역현의 왕궁과 동일한 방식이 적용되었으니 장단경의 최상위 집단이 이동된 것이다

 

          삼국유사에서  ‘신선이 되었다’는 기록은 세력 전체의 대규모 이동을 의미한다
          BC 3세기 초 연나라 진개가 하북성 석가장시 지역의 중산국을 복속시키고 연 5군을 설치하자

          이동을 시작하여 약 100~150년간 요서와 요동을 거쳐서 BC 2세기 말에 한반도 중부에 정착했다

  

    (3) 하북성 역현의 장당경 고조선 이동의 고고학적 근거

 

         >>> 하북성 역현 장단경의 최상위 집단이 고도의 기술자와 주력 집단을 데리고 이동

 

          연나라 진개가 하북성 석가장시 지역의 중산국을 복속시키고 연 5군을 설치 하자

          직사각형 전축 고분 절구다짐 축석 공법경질 타날문 토기돌집(지상 노출형 석곽) 등
          하북성 역현의 장당경 문화(속칭.연하도 문화)가 BC 3세기 초에 이동하여 BC 2세기 말에 한반도에 전파됨

 

    (4) 장당경 문화(속칭.연하도 문하)의 이동 경로 및 시기

 

           하북성 역현(~BC 4세기 말)-->요서지역(BC 3세기~)-->요동지역(BC 2세기 초~)-->한반도 전역(BC 2세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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