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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수도 이동과 수도 위치

 

1)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 수도는 주몽의 졸본성(BC 37), 유리왕의 국내성(AD 3), 산상왕의 환도성(AD 209),
동천왕의 평양성(AD 247), 고국원왕의 황성(AD 343, 평양동황성=평양 동쪽의 황성),
장수왕의 평양성(남평양성, AD 427년), 평원왕의 장안성(평양성, AD 586)이다

2) 당태종이 편찬 지시한 북사 고구려열전에는 고구려 3경이 국내성, 평양성(장안성), 한성이라고 했는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의 고구려 수도에는 한성이 없고 모두 3글자인데 황성(평양동황성=평양 동쪽 황성)만 2글자다
황성(黃城)의 의미는 황제의 성이니
고구려 수도 황성(평양동황성=평양 동쪽 황성)을 당나라 학자가 한성(漢城)으로 바꾸어 기록한 것으로 본다

3) AD 245년(동천왕) 관구검에게 환도성이 초토화 되었고, AD 342년(고국원왕)에는 전연 모용황이 환도성을
함락하고 환도성을 파괴하였다.
※주)  『삼국사기 고국원왕』 12년(AD 342) 가을 8월에〔왕이 평양성에서〕환도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삼국유사 왕력편 고국원왕』 임인년(AD 342) 8월에 안시성으로 도읍을 옮겼는데, 즉 환도성이다

환도성이 여러번 침략당하고 파괴된 것은 고대 중국 왕조와 가까웠기 때문이기에 평양성인 진황도시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황성(요하 동쪽 요양시 부근)으로 고국천왕이 도읍을 옮겼다고 본다.

4) 졸본성은 비류수 부근에 있고 관구검과 환도성의 동천왕이 전투한 장소가 비류수이니
졸본성과 환도성 모두 비류수 부근으로 추정된다

한나라가 조공한 옥갑으로 (졸본)부여왕의 장래를 치렸는데
옥갑이 출토된 하북성 보정시 만성현이 졸본성으로 보이니 하북성 보정시 지역에 비류수가 있었다

비류수(沸流水)의 뜻을 풀이하면 (끓을 비 자=용솟음할 불자)에,  (흐를 류)이니
폭포처럼 흐르는 강이니, 폭하(瀑河, 폭포 폭, 물 하)다

하북성 보정시 지역의 폭하(瀑河)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비류수(沸流水)다

환(丸)의 상형문자와 비슷한 산이 있는 하북성 보정시 역현 북소촌(北邵村) 지역을
환도성(안시성)으로 추정한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안시성이 고구려 도읍이었다는 내용이 있으니 안시성을 환도성으로 추정한 것이다)

5)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성은 남평양성으로 하북성 형수시 안평현에 있었던 요동성이다
(신당서에서 요동성에는 주몽의 사당이 있고 쇠사슬 갑옷과 날카로운 세모창인 신물이 있다고 했으니
요동성이 장수왕의 평양성인 남평양성으로 추정된다 - 고구려 수도였기에 신물이 있었다)


6) 
하북성 북경 지역에는 유리왕과 관계된 유리하 유리묘 등의 지명이 남아 있으니
고구려 유리왕 시대의 국내성은 하북성 북경 지역으로 추정된다

☞ 『 < 북사(北史) 열전(東夷列傳) 「고구려(高句麗)」 >』
고구려 도읍은 평양성으로 장안성이라고도 한다.
그 외에 또 국내성 및 한성이 있는데, 역시 별도의 도읍으로 그 나라에서는 3경이라 부른다.

[원문] 其國, 都平壤城, 亦曰長安城. 其外復有國內城及漢城, 亦別都也, 其國中呼爲三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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