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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지도(七支刀)를 백제 근초고왕이 만들었다는 주장은 사이비역사다
( 백제 태자가 칠지도를 만들어 동생인 일왕에게 준 것이 칠지도 명문의 펙트 다)
1) 일본서기 신공 52년(AD252)에
"백제가 구저를 통해 칠지도를 보냄" 기사가 있으니 근초고왕(AD 346 ~375년) 시기가 될 수 없다
일본서기 신공 52년(AD252)을 이주갑 인상으로 보아
근초고왕 시기인 AD 272년을 주장하는 것이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만든 식민사학이다
2) "칠지도 명문"에
"태O 4년(泰O 4年)" 이니 태시( 泰始) 4년(AD268)이기에 근초고왕(AD 346 ~375년) 시기가 될 수 없다
이주갑 인상설에 맞추기 위해
"태O 4년(泰O 4年)" 을 太和 4년(AD 369년)의 근초고왕 이 제작했다는 주장은 일제의 식민사학이다
"태O 4년(泰O 4年)" 은
태화太和 4년(AD 369년)이 아니라 태시泰始 4년(AD268년) 이기 때문이다
(태泰가 태太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학문적 주장이 될 수 없다)
■ 칠지도(七支刀) 명문(칠지도에 세겨있는 문자)는 펙트이니 펙트를 부정하는 것은 사이비 역사
1) 칠지도 앞면 명문
泰△四年五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練銕七支刀出(生)辟百兵宜供供侯王△△△△祥(作)
태(시) 4년(AD286년) 11월 16일 병오 날 정양에 백번 단련한 철을 재료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에게 나누어 줄 만하다. △△△△가 만들었다.
2) 칠지도 뒷면 명문
先世以來未有此刀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傳示後世
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가 기생성음이기에,
(백제 왕세자가 동생인) 왜왕 지(旨)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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