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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압록수와 살수압록강과 청천강이라는 주장사이비 역사

 

AD 945년에 구당서를 편찬한 북송학자들이 압록수 이름을 이동시켰다
  

    1) 북송 시기인 AD 945년에 편찬된 구당서 이적열전에
         이적이
압록수에 도착해서 2백리를 추격하여 평양성에 도착했다
         (率兵二萬略地至鴨綠水. 賊遣其弟來拒戰, 勣縱兵擊敗之, 追奔二百里, 至於平壤城.)

    2) 당태종 시기인 AD 650년 경에 편찬된 수서 우문술 열전에

         우문술이 평양성에서 후퇴하면서 살수에서 1.5일동안 450리를 도망쳐서 압록수에 도착했다

         ( 東濟薩水, 去平壤城三十里, 因山爲營. ...,遂因其詐而還. 衆半濟, 賊擊後軍, 
           於是大潰不可禁止, 九軍敗績, 一日一夜, 還至鴨綠水, 行四百五十里.)

 

     (1) 구당서에는 압록수에서 평양성까지 거리가 200리이고

     (2) 수서에서는 압록수에서 살수까지 거리가 450리
           (그리고 살수 동쪽의 최소 3십리 거리에 평양성이 있다. )
 
     수나라/당나라 시기에 고구려 평양성은 위치가 바뀌지 않았으니

     평양성에서 480리(450리 + 30리) 이상의 거리에 있었던 압록수를
     평양성에서 200리 거리에 있는 압록수로 북송학자들이 압록수 이름을 이동시킨 것이다 

 

     수나라의 군대가 전멸한 살수 대첩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AD 950년 경의 북송학자들이 살수를 압록수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 당태종 시기인 AD 650년 경에 편찬된 수서 우문설 열전 내용에 의해
    압록수와 살수는 지금의 압록강과 청천강이 될 수 없다

   

※주) 수서 우문술열전의每鬥便北 :"싸울 때마다 편하게 북쪽으로 갔다"

         --> 북송학자 사마광이 자치통감에서 每戰輒走 : "싸울 때마다 번번이 달아났다"

               변형시켰고, 삼국사기에서 수서가 아닌 자치통감 내용을 인용하면서

               고구려 평양성(장안성), 압록수, 살수의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1) 당태종 시기인 AD 650년 경에 편찬된  수서 우문술 열전에서

    수나라 군대를 방문후, 을지문덕이 압록수를 건너와서 싸울때마다 편하게 북쪽으로 갔다고 했다

    (遂與諸將渡水追之. 時文德見述軍中多飢色, 欲疲述衆, 每鬥便北.)

 

     압록수가 압록강이면 남쪽으로 가야지 북쪽으로 갈 이유가 없으니

     고구려 압록수는 지금의 압록강이 될 수 없다

    

2) 당태종 시기인 AD 650년 경에 편찬된  수서 우문술 열전에서

    압록수 북쪽 450리 거리에 살수가 있다고 했다
    (每鬥便北.
東濟薩水... 遂因其詐而還.衆半濟, 賊擊後軍. 一日一夜, 還至鴨綠水, 行四百五十里.)

 

    청천강은 압록강 남쪽에 있기에
    압록수 북쪽 450리 거리에 있는 살수는 청천강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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