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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석산, 요수, 전국시대 연나라 도성 계(薊)의 위치가 중요한 이유

1. 진시황의 만리장성이 갈석산에서 시작됐다는 통설

    사마천 사기 하본기에서 당나라 학자 사마정(AD 656년  - 720년)이 갈석산에 대해 색은에서 주석하기를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장성이 시작된 곳이라고 태강지리지(AD 280년 ~ 289년)가 말했다」

    는 내용으로 장성이 진시황의 만리장성으로 갈석산에서 만리장성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발생했다

    [원문] 史記 卷二 夏本紀 第二 【索隱】 太康地理志云「樂浪遂城縣有碣石山, 長城所起.」

    

    따라서 태강지리지의 장성이 진시황의 만리 장성이라는 근거도 없지만

    고대 갈석산을 찾아면 진시황의 만리장성의 동쪽 시작점을 찾을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

    ※주) 갈석산에서 시작된 장성은 진시황의 만리장성이 아니라 당빈이 옛날 장성을 수리한 사마염의 서진장성임

            (하남성 낙양 북쪽의 온성에서 갈석까지 3천리 장성을 진장성이라고 했지만 진시황의 만리장성이 아님.

           [원문] 晉書 卷42 列傳 第十二 唐彬(AD 235-294) : 復秦長城塞, 自溫城洎于碣石, 綿亙山谷且三千里.)

  

2. 요수를 기준으로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대 요동(군)과 고대 요서(군)을 구분했다는 통설

    요수를 기준으로 고대 요동(군)과 요서(군)을 구분했다는 문헌 내용이 없지만

    요수를 찾아야 전국시대의 고대 요동(군)과 요서(군) 위치를 찾을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

 

3. 전국 시대 연나라 도성 계(薊)의 위치가 북경 부근 계현(당산시 계주구)라는 통설

    전국시대 연나라 위치가 북경지역이라는 문헌 내용이 없지만

    연나라 위치가 북경 지역이니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이

    하북성 북부의 명나라 만리장성(연산산맥) 남쪽에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4. 【종합하면】

전국시대 연나라가 북경지역에 있었다는 근거없는 통설을 기반으로

갈석산과 요수를 찾아서 요동(군) 동쪽에 있는 낙랑군(위만조선) 위치를 찾는 것은 근거없는 믿음이다

 

■ 한나라 시대의 고대 갈석산 위치 고찰
     : 고대 갈석산은 고대  춘추 시대 하수(고대 황하) 부근인 태행산맥의 산중에 하나다

[출처] 바이두 백과의 시대별 고대 황하 흐름  --> 黄河故道图片_百度百科 (baidu.com)

[출처] 바이두 백과의 황하흐름 변천도 --> 黄河故道图片_百度百科 (baidu.com)

 

1. 사마천사기 오제본기 제우편에 9개 산맥(연결된 산)이 있는데

    산서성 중부 장치시를 기준으로 태행산맥 서쪽 태악산, 태행산맥 남쪽 왕옥산, 태행산맥 동쪽 갈석산이 나오니

    갈석산은 태행산맥에 있는 산이다

 

☞ 『사마천 사기(史記) 本紀 卷二 「하본기(夏本紀) 제우(帝禹) 」』
호구산과 뇌수산은 태악산까지 이어지고(태행산맥 서쪽), 지주산과 석성산은 왕옥산까지 이어진다(태행산맥 남쪽).
태행산과 상산은 갈석산에 이르러 해海(큰 강이나 큰 호수)로 들어간다(태행산맥 동쪽).

 
[원문] 道九山 : 壺口雷首至于太嶽, 砥柱析城至于王屋. 太行常山至于碣石, 入于海. 

 

2. 사마천 사기 오제본기 제우편에 갈석산을 우측(서쪽)을 끼고 해海(춘추시대 하수, 고대 황하)를 따라 낙양으로 간다는

     내용이 있으니 고대 갈석산은 춘추 시대 하수(고대 황하) 부근인 태행산맥의 산중에 하나다

 

     춘추시대 하수(고대 황하)가 춘추시대 말에 물길이 비뀌었으니 사마천이 상서의 하河를 큰강이나 큰호수를 나타내는

     해海자로 바꾸어서 사기에 기록했다

     (안양시 한단시 형태시를 따라 북쪽으로 흘러서 형수시를 거쳐서 천진시로 흐르던 고대 황하(하수, 河水)가

      춘추시대 말에 산동성 덕주시 방향인 동북방향으로  흐르게 되었으니,

      춘추시대 말의 문헌인 상서의 하河자를 큰강이나 큰 호수를 나타내는 해海로 사마천이 사기에 바꾸어 기록한 것이다)

 

☞ 『사마천 사기(史記) 本紀 卷二 「하본기(夏本紀) 제우(帝禹) 」』

조이의 특산품은 짐승가죽 옷인데, 우측(서쪽)으로 갈석산을 끼고 고대 황하(해海, 하河)를 따라 낙양으로 운송되었다
 
[원문] 鳥夷皮服, 夾右碣石, 入于海. (☞ 『尙書』: 鳥夷皮服, 夾右碣石, 入于河.)

 

3. 【종합하면】

  하북성 북부에서 춘추시대 하수(고대 황하)를 통해 낙양으로 가기 위해 태행산맥과 만나는 하북성 석가장시 남쪽에

  고대 갈석산이 있으니, 하북성 석가장시 남부 찬황현의 1400m높이로 우뚝 솟은 장석암이 고대 갈석산이다

  

  ※주) ⓛ 장석암은 춘추시대 하수인 고대 황하와 50 km 정도 떨어져 있고,

               장석(嶂石)은 넓쩍한 돌이고, 갈석(碣石)은 비석처럼 생긴 돌이니 같은 말이다

           ② 지금의 진황도시 갈석산은 600m 높이의 산으로 춘추시대 하수인 고대 황하(천진시)와 200 km 거리에 있고,

                2000m 높이의 보정시 백석산은  춘추시대 하수인 고대 황하(천진시)와 250 km 거리에 있다

                춘추시대 하수인 고대 황하부근이 아닌 진황도시 갈석산과 보정시 백석산은 고대 갈석산이 될 수 없다

 

■ 한나라 시대의 고대 요수 위치 고찰
     : 춘추전국 시대  하수(고대 황하)를 한나라 사람들이 요수라 했다  

1. 전국시대 사람 한비자(BC 280?∼BC 233)가 유도편에서

    연나라 소왕이 (제나라 침공에 방비하기 위해) 춘추시대 하수(고대 황하)를 경계로 하여 계(薊)를 나라(도성)으로

    삼았다고 기록했으니 전국시대 연나라 도성 계(薊)의 위치는 춘추시대 하수(고대 황하) 부근에 있었다

※주) 국(國) 자는 나라와 도성의 의미가 있지만 고대 중국 학자들은 국(國) 자를 대부분 도성의 의미로 사용했다

 

☞ 『 한비자(韓非子) 「유도(有度)」 』

연나라 소왕(소양왕, BC 312 - 279)이 하수를 경계를 삼아 계薊를 나라의 도성으로 삼았다

탁(涿)과 방성(方城)을 습격하고, 제(齊)나라를 멸할 정도로 해치고, 중산(中山)을 평정하였다

 

※주) 연소왕이 공자시절에 제나라가 침입하여 연나라를  초토화 시켰으니

         제나라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하수를 도성(나라) 계의 경계로 삼은 것이다

​ 

[원문] 燕(昭)襄王以河爲境, 以薊爲國, 襲涿, 方城, 殘齊, 平中山.

 

2.  전한 소제(BC 74~BC 49) 때에 편찬된 염철론의 험고에서

     연나라 (도성 계薊)는 요수로 둘러 쌓이고, 갈석산에 막혔으니 험고라 했다

 

☞ 『 염철론(鹽鐵論) 「험고(險固)」 』

연(燕)나라( 도성 계薊)는 갈석산에 의해 막히고, 사곡(사하)에 의해 끊겼으며, 요수(遼水)에 의해 둘러싸였다.

 

※ 주) 연나라 남쪽은 조나라(한단시)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산서성 중부 장치시(중산국)로 가는 계곡인 사하(沙河)가 발원하는 사곡(沙谷)으로
       지금의 형태시의 사곡(沙谷)이 험고의 사곡(邪谷)이다.

 

[원문] 燕 塞碣石, 絶邪谷, 繞援遼.

 

3. 【종합하면】

    전국시대  한비자의 유도편의 하수(고대 황하)가 전한 시대의 염철론에서는 요수라고 했으니

    한나라 시대(전한, 서한)의 요수는 춘추전국시대 하수(고대 황하)다

 

※주) 후한시대인 AD 82년에 편찬한 한서지리지의 소요수는 요동군 북쪽의 현도군에 있으니

         염철론 험고의 전한시대의 요수와 다른 강이다(소요수와 요수는 다른 강이다)

 

■ 전국시대 연나라 도성 계(薊)의 위치 고찰
     : 전국시대 연나라 도성 계薊는 한나라 발해군(산동성 덕주시)와 고대 갈석산(석가장시
       찬황현 장석암) 사이의 도회지고, 춘추시대 하수(고대 황하) 서쪽에 있었다

1. 전국시대 사람 한비자(BC 280?∼BC 233)가 유도편에서

    연나라 도성 계薊의 동쪽 경계는 춘추시대 하수(고대 황하)라고 했다.

  

☞ 『 한비자(韓非子) 「유도(有度)」 』

연나라 소왕(소양왕, BC 312 - 279)이 하수를 경계를 삼아 계薊를 나라로 삼았다

탁(涿)과 방성(方城)을 습격하고, 제(齊)나라를 멸할 정도로 해치고, 중산(中山)을 평정하였다

 

※주) 연소왕이 공자시절에 제나라가 침입하여 연나라를  초토화 시켰으니

         제나라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하수를 나라의 경계로 삼은 것이다

​ 

[원문] 燕(昭)襄王以河爲境, 以薊爲國, 襲涿, 方城, 殘齊, 平中山.

 

2. BC 91년 한나라 시대에 편찬된 사마천 사기 화식열전에 따르면

    연나라 (도성 계薊)의 위치는 발해군(산동성 덕주시)과 고대 갈석산(석가장시 찬황현 장석암) 사이다

 

☞ 『 사마천 사기(史記) 卷百二十九 「화식열전(貨殖列傳)」 』

    夫燕亦 勃碣之閒一都會也.  연(燕) 역시 발(발해군)와 갈(갈석산) 사이에 있는 도회지이다. 

 

3. 전한 소제(BC 74~BC 49) 때에 편찬된 염철론의 험고에서

     연나라 (도성 계薊)는 춘추시대 하수(고대 황하)인 한나라 시대의 요수로 둘러 쌓이고, 갈석산에 막혔다고 했다

 

☞ 『 염철론(鹽鐵論) 「험고(險固)」 』

연(燕)나라( 도성 계薊)는 갈석산에 의해 막히고, 사곡(사하)에 의해 끊겼으며, 요수(遼水)에 의해 둘러싸였다.

 

[원문] 燕 塞碣石, 絶邪谷, 繞援遼.

 

4. 【종합하면】

     전국시대 연나라 도성 계(薊)는 춘추시대 하수(고대 황하) 서쪽에 있고, 발해군(산동성 덕주시)과 고대 갈석산(석가장시

     찬황현 장석암) 사이이며, 춘추시대 하수(고대 황하) 인 한나라 시대의 요수에 둘러쌓여 있다고 했으니,

     하북성 남북부의 형태시 거록현 지역에 전국시대 연나라 도성 계(薊)가 있었다.

 

※주 1) 고대 발해는 춘추시대 말에 춘추시대 하수(고대 황하)가 물길이 바뀌어

            덕주시 방향으로 한나라 시대의 새로운 황하 흐름이 생겼기에 우쩍일어난 큰 강인

            발해(勃海, 우쩍일어날 발, 큰물가인 큰 강)라고 중국 고대인들이 불렸다.

            또한 한나라 시대의 황하인 발해 물가에 있기에 산동성 덕주시 부근을 발해군이라 이름지었다

  

☞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 「발해군(勃海郡)」』

발해군(勃海郡)은 고제(高帝, 한고조 유방)가 설치했는데,

사고가 말하기를 발해(勃海)의 물가에 있기에 발해군으로 이름지어진 것이라 했다.

 

[원문] 勃海郡 高帝置, 師古曰在勃海之濱 因以為名.

  

※주 2) 사마천 사기 진섭세가에 따르면

어양군을 지키기 위해 대택향에 군사를 주둔시켰는데 대택향(대륙택향)은 대륙택 부근의 마을로 추정돤다

따라서 어양군이 대륙택 근처이고, 요동군도 대륙택을 기준으로 해서 찾아야 한다

 

☞ 『 사마천 사기(史記) 卷四十八 「진섭세가(陳涉世家)」 』

진시황 2세 원년(BC 209년) 7월, 빈민가 백성들을 징발하여 수자리를 보내 어양(漁陽)을 지키게 하여

900명이 대택향(大澤鄕)에 주둔하게 되었다.

 

※주) 대택향(大澤鄕)은 대륙택향(大陸澤鄕)이니 대륙택(大陸澤)부근의 마을이다

 

[원문] (秦始皇) 二世元年七月, 發閭左適戍漁陽, 九百人屯大澤鄉.

 

☞ 『 한서지리지 거록군(鉅鹿郡) 』

鉅鹿 : 禹貢大陸澤在北. 거록현 : 우공의 대륙택(大陸澤)이 (거록현) 북쪽에 있다.

 

※주 3) 하본기에 강줄기가 9개로 나누었다가 하나로 합쳐진 곳이 역하인 역수라고 했으니
       사하가 8개로 나누어지고 하나로 합쳐지는 형태시 남쪽의 형태구룡협은 역하로 역수(易水)인 하역수다  
 
☞ 『사마천 사기(史記) 本紀 卷二 「하본기(夏本紀) 제우(帝禹) 」』
황하(하수) 물길, 북쪽에 나누어 져서 아홉 개의 강줄기가 되고,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역하(逆河)를 바다(하수)에 들어가게 했다.

 
[원문] 道九川 : 道河, 北播為九河 同為逆河 入于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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