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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나는 가야"라는 주장(임나가야설)은 조상의 영토와 역사를 일본에 팔어먹는 매국사학이다

 

※주) "391년 왜나라가 신라와 백제를 신민으로 삼았다" "왜나라 왕은 한반도 남부의 군사적 지배권을 인정 받았다' 고

기술하고, 일본서기 임나의 다라국이 경남 합천이라는 임나 일본부설의 근거인 임나 7국을 한반도 남부로 비정한 지도를

일본 역사교과서에 기술하여 임나 일본부설을 일본학생들에게 가르키고 있으니..

 

"임나는 가야"라는 주장은 조상의 영토와 역사를 일본에 팔어먹는 매국사학이다

 

 

■ 임나가 가야라는 주장(임나가야설)은 역사학자들이 고대문헌을 엉터리로 해석한 국민을 속이는 기만행위이고 ,

역사학자들의 뇌피셜이며, 역사학자들이 소설을 쓴 것이다

 

양직공도, 광개토태왕비, 삼국사기 강수열전, 진경대사 탑비문에 나오는 임나, 임나가야, 임나가랑, 임나왕족의

임나는 가야가 아니다

 

1) <양직공도>에 다라국이 가야국이라는 기록도 없고, 다라국이 경남합천이라는 내용도 없다

2) <광개토태왕비>에 '임나가라'했으니 임나는 가야가 아니다('임나'와 '가야' 또는 '임나가라'로 이해해야 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에 따르면 광개토대왕 시절의 왜의 위치는 중국 절광성과 대만이었다)

3) <삼국사기 강수열전>에 강수가 가야계 인물이라는 내용이 없으며 강수의 성의 본관이 임나가랑으로 나온다

4) <진경대사 탑비>에는 김유신의 자손(아들 또는 손자)가 임나 왕이 되었고 임나 왕의 후손이 진경대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김유신의 아들 원술이 임나 왕이 되었으나, 김유신에게 아들로 인정받지 못했기에

임나 왕인 된 원술이 이름을 알리지 않고 김유신의 후손으로만 알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 금관가야가 임나라는 주장은 일본서기 내용을 곡해한 근거없는 주장으로

일본서기에 따르면 금관가야는 임나가 될 수 없다

 

1. 간혹 김해 북쪽이 낙동강으로 막혀 있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김해 북쪽은 산으로 막혀 있다.

 

김해 북쪽을 막고있는 산을 넘으면 낙동강이 동남으로 흐르고, 양산시 물금읍에서 남쪽으로 흘러서 김해 동쪽을 지나가고

해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김해 북쪽은 산으로 막혀 있고, 낙동강은 김해 동쪽에 있다고 한다

(김해 동쪽에 낙동강이 있으니 임나 동쪽이 바다로 막혀있다는 내용이 없으니 금관가야는 임나가 아니다)

 

2. 임본서기에 임나는 계림의 서남쪽에 있다고 했으니

김해는 경주의 서남쪽이 아니라 남쪽에 가깞고 남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김해는 경주의 남쪽에 있기에 일본서기에 의해 금관가야는 임나가 될 수 없다

  

3. [ BC 33년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 위치는] 임나는 북쪽이 바다로 막혀있고, 계림의 서남쪽에 있다

일본서기 숭신 65년 7월(B.C.33년) 任那者去筑紫國, 二千餘里. 北阻海以在鷄林之西南.

임나는 축자국에서 이천리 가야 하고, 임나 북쪽은 바다로 막혀 있고 계림의 서남쪽에 있다

  

4. 김해 북쪽은 산으로 막혀 있으니 바다로 막혀 있지 않고, 김해는 경주의 서남이 아니라 남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김수로왕의 딸이 야마토 왜의 신공황후라는 설도 있기에 임나는 김해 금관 가야가 될수 없고,

경상도와 전라도에 북쪽이 바다로 막혀있고 계림의 서남쪽에 있는 가야는 없다

 

 

■ 대학 역사 교수와 학교 역사 선생들이 임나는 가야라고 엉터리 주장을 하고 있다

 

[출처] 오마이뉴스 '전국역사교사모임-가야고분군세계유산등재추진단, 관련 자료 내'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357514

 

[기사의 엉터리 주장 내용]

 

1) <양직공도>의 백제국사전에는 "주위에 소국은 반파,탁, 다라, 전라, 사라, 지미, 마련, 상기문, 하침라 등이 있는데

백제를 따른다. "라고 기록되어 다라국이 백제 주위에 있는 나라로 소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 다라국이 경남 합천이라는 내용이 없다

 

2) <광개토왕비문>에 보면 "고구려군이 한반도 남부에서 군사 활동을 벌인 곳으로

'임나가라(任那加羅)'"라는 지명이 나온다

--> '임나가라'했으니 임나는 가야가 아니다('임나'와 '가야' 또는 '임나가라'로 이해해야 한다)

 

3) <삼국사기>(강수 열전)를 보면 "중원경(지금의 충주) 출신이자 가야계 인물인

강수 스스로가 자신을 '임나가량(任那加良)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장면이 있다

--> 강수가 가야계 인물이라는 내용이 없고 강수 스스로 성의 본관이 임나가랑이라고 했다

 

4) 나말여초의 인물로서 김유신의 후손인 <진경대사의 탑비문>을 보면 "속세에서의 성은 신김씨(新金氏)

(김해 김씨)이며, 그 선조는 임나의 왕족"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 진경대사의 선조는 임나의 왕족이며 임나 왕족의 선조(먼 조상)은 김유신이라고 했으니,

김유신의 후손(원술 추정)이 임나 왕이 되어 가야 멸망 이후에도 임나가 존재했다는 것이니

임나는 한반도가 아니라 대마도나 일본에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 임나 관련 고대 사료

 

1. 양직공도

"다라국과 관련된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양나라 원제(526~536년) 시기에 제작된 <양직공도>이다"이니

다라국이 양직공도에 나오는 것은 맞지만...

다라국이 가야국이라는 기록도 없고, 다라국이 경남합천이라는 내용도 없다

 

따라서 다라국이 경남합천이라는 주장이 헛소리가 아니면 무엇인가?

또한 임나일본부 다라국이 경남합천이라는 일본 학교 교과서 내용으로 일본 학생들을 가르키고 있으니

다라국이 경남합천이라는 주장은 식민사학이자 조상역사와 영토를 일본에 팔아먹는 매국사학이 된다

 

[양직공도 원문] 所治城曰固麻, 謂邑曰擔魯, 於中國郡縣, 有二十二?魯, 分子弟宗族爲之.

旁小國有 叛波, 卓, 多羅, 前羅, 斯羅, 止迷, 麻連, 上巳文, 下枕羅 等附之.

言語衣服 略同高麗, 行不張拱 拜不申足, 以帽爲冠, 襦曰複衫, 袴曰褌. 其言參諸夏 亦秦韓之遺俗.

 

 

그 나라(백제) 도성을 고마라 하고 읍을 담로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 군현과 같다. 22담로가 있어 (왕의) 자제종족이 나누어 다스렸다.

주변 소국으로 반파, 탁, 다라, 전라, 사라, 지미, 마련, 상기문, 하침라 등이 있어 부용한다. 언어와 의복은 대체로 고구려와 같다.

걸을 때 팔을 벌리지 않고 절을 할때 다리를 펴지 않는다. 모자로 관을 삼고 저고리를 복삼이라 하며 바지를 곤이라 한다.

그 나라 말에는 중국 말들이 섞여 있으니 이는 진한의 습속이 남은 것이다.

 

2. 광개토대왕비

광개토왕비문에 나오는 "임나가라"를 "임나"가 "가야"라고 해석하는 것은 엉터리 주장이고 엉터리 낭설이다

"임나가라"는 "임나"와 "가라"로 이해하거나, 가야국의 한지명인 "임나가라"로 해석해야 한다

 

예를 들면 고조선을 "고"가 "조선'이라는 이해할 수 없고 "고조선"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이

'임나가야"의 의미는 가야의 소국에 임나가야가 있거나 가야의 한 지역명으로 이해해야 한다

 

[광개토대왕비문 원문] 十年庚子 敎遣步騎五萬 往救新羅. 從男居城至新羅城 倭滿其中. 官軍方至 倭賊退 □□背急追 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

安羅人戍兵. □新羅城□城 倭寇大潰 城▨▨▨盡□□□安羅人戍兵新□□□□其□□□□□□□言□□□□□□□□□□□□□□□□□□□□□□□□□□辭□□□□□□□□□□□□□潰□▨▨▨

安羅人戍兵. 昔新羅寐錦未有身來論事 □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 □□□□ 寐錦□□僕 勾□□□□朝貢.

 

영락 10년(AD400) 경자년, (왕이)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게 했다. 남거성(男居城)을 거쳐 신라성에 이르니, 그곳에 왜군이 가득하였다.

관군이 도착하자마자 왜적이 퇴각하여 그 뒤를 지체없이 쫓아 임나가라의 종발성에 이르니 성이 곧 항복하였다. (이에) 신라인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관군이) 신라성, □성을 [차지하고] 왜구가 크게 무너지니 성(城)…. ▨▨▨ 신라인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과거 신라의 매금(이사금)은 직접 와서 여쭈지 않았는데,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에 이르러 신라 매금이 [직접 와서 여쭈고] 조공하였다.

 

※주)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에 따르면 동예가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인 중국 하북성 동부해안 창주시이니

동예(중국 하북성 중부 동부해안인 천진시 남쪽 창주시)의 남쪽에 있는 삼한의 위치는 중국 산동성과 강소성이 됩니다

삼한의 위치는 중국 산동성 강소성이라면 초기 신라나 백제 위치는 당연히 산동성 강소성이 되어야 한다

 

삼한의 지리적인 위치 비정의 구체적이고 자세한 내용은

'고조선 열국 지도(BC 1세기의 고구려 부여 마한 등 위치)"에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 https://blog.naver.com/tnrnfle/222488545290

3. 삼국사기 강수열전

강수가 가야계 인물이라는 내용도 없으며, 임나가랑이 가야라는 내용도 없다

삼국사기에는 강수 스스로 성의 본관이 임나가랑인 사람이라고 했을뿐이다

 

 

[삼국사기 강수열전 원문] 強首, 中原京沙梁人也. 父昔諦奈麻....(생략) 王驚喜, 恨相見之晩. 問其姓名,

對曰, “臣夲任那加良人, 名字頭.

” 王曰, “見卿頭骨, 可稱強首先生.” 使製迴謝唐皇帝詔書表, 文工而意盡. 王益竒之, 不稱名, 言任生而已.

 

 

강수(强首)는 중원경(中原京) 사량부(沙梁部)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석체(昔諦,성과 이름이니 석탈해의 석씨?) 나마(奈麻)였다...(생략)

왕이 놀라고 기뻐하며 그를 늦게 만난 것을 유감스러워 하였다. 그 성명을 물으니 “소신의 본관[夲,성의 본관]은 임나가량(任那加良)이며, 이름은 우두(牛頭)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왕이 “그대의 머리뼈를 보니 강수선생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하였다. 당나라 황제의 조서에 감사하는 표(表)를 짓게 하였는데, 글이 뛰어나고 뜻이 다 담겼다.

왕이 그를 더욱 기특하게 여겨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임생(任生, 임나가랑의 선생)이라고 할 뿐이었다.

 

4. 진경대사 탑비문

진경대사의 선조는 임나의 왕족이며 임나 왕족의 선조(먼 조상)은 김유신이라고 했으니,

김유신의 후손이 임나의 왕족으로 가야가 멸망후에도 임나가 존재했다는 것이니 임나는 한반도가 아니라 대마도나 일본에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김유신은 김해 금관가야가 신라에게 망하고 60년 후에 태어났고 금관가야 마기막 왕의 증손자이니

김유신은 금관가야 왕족의 후손으로 볼수 있다

 

[진경대사 답비문 원본] 大師諱審希俗姓新金氏其先任那王族草拔聖枝每苦隣兵投於我國

遠祖興武大王鼇山禀氣鰈水騰精握文符而出自相庭携武略而高扶[王室]▨▨

 

대사의 이름은 심희(審希)이고, 속성은 신(新) 김(金)씨이다. 그 선조는 임나(任那)의 왕족이요,

초발(草拔)의 신성한 후예였는데, 매번 이웃 나라의 군대에 괴로워하다가 우리나라에 귀의하였다.

먼 조상인 흥무대왕(興武大王)은 오산(鼇山)의 정기를 받고 접수(鰈水)의 정기를 타고 났다.

문부(文符)를 쥐고 재상의 집안에 태어나 무략(武略)으로 왕실을 높이 떠받들었으며, ▨▨

 

※주) (네이버 어학사전 내용)

1) 先祖 (선조) 할아버지 이상(以上)의 조상(祖上).

2) 遠祖 (원조) :고조(高祖) 이전(以前)의 먼 조상(祖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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