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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정사) 삼국지 동이전과 일본서기로 교차검증되는 비류백제(부여) 의려왕(고이왕)의 일본열도 진출

 

■ AD 238년 4월에 비류백제인 부여 의려왕(백제 고이왕)이
    하북성 창주시를 떠나 한반도 서부지역으로 갔다

 

백제 제8대 고이왕의 성이 우태의 우씨이고,
사망년도가 AD 286년으로, 진서 동이열전 부여에 나오는 의려왕의 사망년도와 동일하기에
백제 고이왕이 부여(비류백제) 의려왕으로 추정된다
 
☞ 『진서 동이열전』
부여(비류백제)가 [서진]의 무제 때에는 자주 와서 조공을 바쳤는데
태강 6년(A.D.285)에 이르러 모용외의 습격을 받아 패하여 [부여]왕 의려는 자살하고,
그의 자제들은 옥저로 달아나 목숨을 보전하였다.
 
(의려가 AD 238에 한반도로 갔고, 비류백제/부여는 태자 의라가 다스렸는데,
전연 모용외가 공격 후에, 의려왕이 보이지 않으니,
모용외 공격 다음해인 286년에 의려왕이 자살한 것으로 진서에 기록되었다)

 

1) 삼국사기 백제본기 고이왕 5년(AD 238년)

     -. 백제 고이왕은 우(優)씨로, 우태의 후손인 삼국지 동이전의 부여(비류백제, 하북성 창주시) 의려왕이다.

     -. 2월 :조조의 위나라가 요동(하북성 형수시 안평현)의 공손연 정권을 정벌한다는 소식을 듣고,
             천자 자격으로 하북성 남부(부수滏水의 발원지인 한단시 부근의 부산 釜山 )에 가서 요동 정벌을 말렸다

 

            [ 二月, 田於釜山, 五旬乃返. 2월에 부산에서 사냥하고 50일 만에 돌아왔다.]

 

     -. 4월 : 조조의 위나라가 공손연 정권과 전쟁하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고, 전쟁에 관여할 수가 없어
                 120현의 사람들을 데리고 하북성 창주시에서 한반도 서부지역으로 의려왕이 떠나게 된다

 

            [ 夏四月, 震王宫門柱, 黄龍自其門飛出.
               여름 4월에 왕궁의 문기둥에 벼락이 쳤는데, 누런 용이 그 문으로부터 날아갔다.]
              ※ 주) 공손연 정권(왕궁의 문기둥)의 몰락(벼락) 징후가 있어,
               부여 의라왕(선비족인 동명왕의 후손이 황룡)이 하북성 창주시를 떠났다는 암호다

 

 2) 중국 정사 삼국지 왜倭열전: 조위(曹魏) 경초 3년(AD 238년)

     -. 6월 : 왜여왕(비미호, 신공황후)'이 대부 '난승미'등을 보내어 대방군에 이르렀다는 내용은
                 위나라 사마의와 공손연과의 전투가 6월에 시작되어 8월에 공손연 정권이 몰락했으니,
                 대방고지에 있었던 비류백제(부여)의 태자인 의라에게 왜의 사신이 방문한 것이다

  

                 [ 景初 二年六月, 倭女王 遣大夫 難升米 等詣郡 :
                     '경초' 이년(AD 238년) 유월 '왜여왕이 대부 '난승미'등을 보내어 (대방)군에 이르렀다]

 

■ AD 247년에 영산강 지역에 있었던 비류백제(부여) 의려왕(고이왕)의 왕자 궁월군이
    일본열도로 진출하여 일본열도 왜(신공황후, 비미호의 왜)의 실권을 장악했다

 

  1) 중국 정사 삼국지 왜倭열전: 조위(曹魏) 정시 8년(AD 247년)

       -. 비류백제(부여) 의려왕(고이왕)의 왕자 궁월군(弓月君)이 일본열도가 건너가

          왜 여왕 비미호(신공황후)를 죽이고, 왜의 실권을 장악한 후 비미호의 딸 대여를 여왕으로 세웠다

 

       [ 正始 其八年, 倭女王 卑彌呼 與 狗奴國男王 卑彌弓呼素 不和,

             卑彌呼以死復立卑彌呼宗女壹與.

             '정시' 8년(AD 247년) 왜여왕 비미호(신공황후)와 비미 궁 소(궁월군) 사이에 불화(전쟁)가 있어

              비미호가 죽자, 비미호 일가의 딸인 대여가 왕이 되었다(일본서기에는 대여도 신공황후로 기록)]

 

  2) 일본서기 신공황후 47년(AD 247년)

      -. 비류백제(부여)의 궁월군이 최초로 신공황후의 일본열도로 진출했고, 신공황후는 백제가 온것을
          슬퍼했다고 했으니 , 비류백제(부여)의 왕자가 신공황후 왜의 실권을 장악한 것이다

 

     ☞ [ 卌七年 夏四月, 百濟王使久氐·彌州流·莫古, 令朝貢.  於是, 皇太后·太子譽田別尊, 
            大歡喜之曰, 先王所望國人, 今來朝之. 痛哉, 不逮于天皇矣. 群臣皆莫不流涕.

            '47년' (AD 247년) 여름 4월에 백제왕은 구저, 미주류, 막고를 보내어 조공하도록 하였다. 

            이에 황태후(신공황후)와 태자 예전별존은 크게 기뻐하며, “선왕이 바라고 계셨던

            나라 사람이 지금 내조하였다. 천황을 뵙지 못한 것이 참으로 슬픈 일이다.”라고 말하자

            군신은 모두 슬퍼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 비류백제(부여) 의라왕(고이왕)의 일본열도 진출은
    오수제 교수의 "백제 고이왕의 일본정복과 응신천왕"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jie96pMV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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