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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 후한서 동이열전 』 의 해海의 틀린 해석이 반도사관(식민사관)의 출발점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 후한서 동이열전 』의 삼한의 위치는 "(三)韓 東西以海爲限"

 

1)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  낙랑군, 대방군과 예, 삼한, 고구려, 동옥저 등 
    고조선 열국들의 상대위치와, 영토 크기 및 지형적인 특성이 있다. 

 

2) 고대 중국인은 큰 강이나 큰호수를 해(海)로 표현했다(바다도 해海라고 했지만..)

 

     특히 하북성 중남부의 북쪽으로 흐르는 춘추시대 고대 황하를 사마천 사기에서 해(海)라고 했다

    「鳥夷皮服, 夾右碣石, 入于海. 【集解】徐廣曰 : 「海, 一作『河.』

      조이의 특산품은 짐승가죽 옷인데, 갈석산을  오른쪽(서쪽)으로 끼고 황하(해海)를 통해 운송되었다.

       【集解】 사기집해에서 서광은 해海는 하河(황하)다」

 

3)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의 "韓 東西以海爲限"을
     삼한의 동쪽과 서쪽이 바다로 막혀있다고 해석하면 삼한은 한반도 남부가 되고,

     위만조선/낙랑군은 대동강 평양이 되지만, 중국 고대사서 내용에 맞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다

   

     (1) 예=동예=예맥의 임금(예군濊君) 남여가 항복해서 BC128년 한무제가 창해군을 설치했는데

           연제지간(연나라와 제나라 사이)라고 했다

           하지만 낙랑군 동쪽에 있는 예=동예=예맥의 위치가 강원도 강릉지역이라면 연제지간이 아니다

     (2)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공격할때 한나라 수군이 사용한 배가 누선인데, 

           누선은 강이나 연안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배다

           따라서 누선은 발해만을 건너서 서해바다를 건서서 대동강 평양까지 갈 수 있는 배가 아니다

 

4)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의 "韓 東西以海爲限"에서

     동쪽 바다를 서해(중국 동해)로 보고, 서쪽 바다를 춘추시대 고대황하로 보면,

     삼한과 고조선 열국 위치는 중국 동부 지역되어 반도사관에서 벗어나고,

     중국 고대사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게 된다

 

5)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의  고조선 열국 위치의 선택지는 2개뿐이다

     첫째는) 해海를 바다로 해석하여 삼한을 한반도 남부, 낙랑군을 대동강 평양,

                 예=동예=예맥을 강원도 강릉지역으로 비정하는 방법과(반도사관/식민사관),

     둘째는) 해海를 하河로 해석하여 삼한을 중국대륙 동부, 낙랑군을 하북성 형수시 무강현,

                예=동예=예맥을 하북성 중동부 창주시로 비정하는 방법이다(대륙사관)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의  고조선 열국 위치 비정시 고려사항

    ※주) AD 280년 경에 『삼국지 위서동이전』이 작성되었고,

            『삼국지 위서동이전』 을 참고하여,  AD 440년 경에  『후한서 동이열전』이 작성되었다

 

1) 『삼국지 위서동이전』의 고조선 열국은 위만조선 시대 상황이다

     (1) 고조선 열국 위치가 위만조선 시대인 근거는 예조의 지금의 (위만) 조선(今朝鮮) 표현이고,

     (2) 요동 동쪽 천리에 있다는 고구려는 동천왕 천도한 평양성 위치이고,

     (3) 사방 2천리의 고구려와 부여 영토가 중복되며, 삼국시대에는 예, 동옥저 라는 나라가 없었다

     (4) 옥저성으로 현도군을 삼았는데, 현도군을 고구려현 서북쪽으로 옮겼고,

           동옥저 지역인 단단대령 동쪽의 영동 7현을 낙랑군 동부도위가 다스렸다.

 

2) 삼국지 위서동이전 내용에서

    (1) 동천왕이 동옥저 서부지역인 평양성으로 AD 247년에 천도했고,

    (2) BC 128년에 한무제가 창해군을 설치 해서 예는 사라졌고, 

         연제지간(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의 창해군은 BC 124년에 폐지되었고,  

    (3) 태조대왕이 AD 56에 동옥저를 정벌하여 고구려 영토가 되었다.

 

3)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에서

     요동 동쪽천리에 있다는 고구려가 동천왕이 AD 247년에 천도한 평양성인 근거는

     "평양성의 위치는 동옥저 서부지역이라는 당고종 아들 장회태자의 후한서에 주석이다

      (東沃沮在高句驪 蓋馬大山之東,其山在今平壤城西.)"

     ※주) 당고종 아들 장회태자는 고구려 평양성인 장안성의 위치를 알고 있던 인물이다.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 후한서 동이열전 』 의 해海 해석에 따른

    반도사관(식민사관)과 대륙사관의 고조선 열국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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