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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경 지역이 "춘추전국 시대 연나라"라는 주장은 사이비 역사다
※주) "춘추전국 시대 연나라가 북경에 있었다"는 주장이 중국 역사왜곡의 시작점이다
1) BC 91년 편찬된 사마천 사기 연소공 세가에
연나라 위치는 연내책제진(제齊나라와 진晉나라 사이) 이라 했으니
춘추 전국시대 연나라 위치는
하남성 황하 근처이니 연나라 위치는 북경 지역이 될 수 없다
※주) 사마천 사기 연소공 세가의 연내책제진(燕內措齊晉)
: 산동성 치박시의 제齊나라와 산서성 서남부의 진晉나라 사이에 연나라가 끼여 있다
☞ 사마천 사기 연소공세가 태사공왈(太史公曰)
연나라는 밖으로는 만맥과 가깝고 안으로는 제(齊)나라와 진(晉)나라 사이에 끼어 있었다
또한 험하고 강한 나라 사이에서 가장 약소한 나라로서 거의 몇 번이나 망할 뻔했다
[원문] 燕 [外]迫蠻貉 內措齊晉 崎嶇彊國之閒 最為弱小小 幾滅者數矣
2) 사마천 사기 화식열전과 AD 90년 경에 편찬된 한서지리지에
연나라 위치는 발갈지간(勃碣之閒)으로 발해(군)과 갈석산 사이라고 했다
춘추전국 시대 연나라 위치가 북경 지역이라면
북경 서쪽에 갈석산이 있어야 하는데
북경 서쪽에 갈석산이 없으니, 북경 지역은 춘추전국시대 연나라가 될 수 없다
☞ 사마천 사기 화식열전
연(燕) 역시 발해(군)과 갈석산 사이에 있는 도회지이다.
[원문] 夫燕亦 勃碣之閒一都會也.
☞ 한서지리지 연나라(燕地)
연나라 수도인 계(薊)는 발해(군)과 갈석산 사이에 있는 도회지였다.
[원문] 薊 勃碣之間一都會也
※주) 사기와 한서에서 발해군의 하천(강)을 의미하는
조선열전의 삼수변氵의 발해(渤海)와 한서의 발해해(勃海海)를 제외하면
발해(勃海)는 산동성 덕주시 지역에 있었던 발해군이다
3) 사마천사기 연소공세가에서
BC 675년에 연나라가 송나라 위나라와 공통으로 낙양의 주 혜왕을 공격하여 희퇴를 주왕으로 세웠고,
BC 674년 에 정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여 연나라 중보를 잡고 혜왕을 주왕으로 복귀시켰다
(1) 낙양에서 북쪽으로 700km정도의 1천 5백리 거리의 북경에 있는 연나라가, 안양시의 위衛,
상구시의 송宋나라와 연합하여 낙양을 공격할 명분은 없었고(위衛나라 원한 전쟁임)
(2) 정주시의 정鄭나라가 낙양에서 북쪽으로 700km정도의 1천 5백리 거리의 북경으로 가서
연나라 중보를 인질로 잡기는 어려웠을 것이니
춘추전국시대 연나라는 북경 지역에 있을 수 없다
☞ 사마천 사기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연나라 장공 16년(BC 675년) 송宋나라, 위衛나라와 공동으로 주 혜왕을 공격하자
혜왕이 온溫으로 달아났고, 혜왕의 동생 희퇴(姬頹)가 주나라 왕이 되었다.
연나라 장공 17년(BC 674년) 정나라가 연나라의 중보(仲父)를 잡고 혜왕을 주나라로 돌려보냈다
(혜왕이 주나라 왕으로 복귀했다)
[원문] 燕莊公十六年 與宋衛, 共伐周惠王, 惠王出奔溫, 立惠王弟穨為周王.
燕莊公十七年 鄭執燕仲父而內惠王于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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