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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나는 가야"라는 주장(임나가야설)은 조상의 영토와 역사를 일본에 팔어먹는 매국사학이다 ※주) "391년 왜나라가 신라와 백제를 신민으로 삼았다" "왜나라 왕은 한반도 남부의 군사적 지배권을 인정 받았다' 고 기술하고, 일본서기 임나의 다라국이 경남 합천이라는 임나 일본부설의 근거인 임나 7국을 한반도 남부로 비정한 지도를 일본 역사교과서에 기술하여 임나 일본부설을 일본학생들에게 가르키고 있으니.. "임나는 가야"라는 주장은 조상의 영토와 역사를 일본에 팔어먹는 매국사학이다 ■ 임나가 가야라는 주장(임나가야설)은 역사학자들이 고대문헌을 엉터리로 해석한 국민을 속이는 기만행위이고 , 역사학자들의 뇌피셜이며, 역사학자들이 소설을 쓴 것이다 양직공도, 광개토태왕비, 삼국사기 강수열전, 진경대사 탑비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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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석산, 요수, 전국시대 연나라 도성 계(薊)의 위치가 중요한 이유1. 진시황의 만리장성이 갈석산에서 시작됐다는 통설 사마천 사기 하본기에서 당나라 학자 사마정(AD 656년 - 720년)이 갈석산에 대해 색은에서 주석하기를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장성이 시작된 곳이라고 태강지리지(AD 280년 ~ 289년)가 말했다」 는 내용으로 장성이 진시황의 만리장성으로 갈석산에서 만리장성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발생했다 [원문] 史記 卷二 夏本紀 第二 【索隱】 太康地理志云「樂浪遂城縣有碣石山, 長城所起.」 따라서 태강지리지의 장성이 진시황의 만리 장성이라는 근거도 없지만 고대 갈석산을 찾아면 진시황의 만리장성의 동쪽 시작점을 찾을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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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에 한국고대사를 풀 ◐열쇠◐가 숨어있다 ※주) 낙랑군과 위만조선, 연나라 장성, 요동군, 요서군이 하북성 중부인 석가장시와 형수시에 있었다고 서기전 91년 완성된 사마천 「사기」와 서기 90년 경에 완성된 「한서지리지」가 신호를 보내고 있다 따라서 사마천 사기의 지리적인 관점에서 해석과 고찰이 중요한 이유다 ■ 춘추시대 연燕 제濟 진秦 등 제후국의 봉지는 100리(40km)를 넘지 않았고 고조선 땅을 빼앗기 전에는 100리(40km) 정도가 연燕나라 영토로 추정된다 1) 기원전 134년에 주부 언 (主父偃, ? ~ 기원전 125년?)이 황제(한漢무제)에게 권유하여 말했다. “옛날(춘추전국시대)의 제후들은 봉지가 1백리를 넘지 않았기 때문에 강약의 형세로 통제하기 수월했습니다"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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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무제 당대 문헌인 사마천사기 화식열전에 한(漢)나라가 황하 주변의 크지 않은 나라였다고 기록되어 있다BC 91년 한무제 시대에 편찬된 사마천 사기 화식열전에 관중(장안, 서안) 평야가 천리이며 한나라 영토(천하)의 3분의 1(1/3)이라고 되어 있으니한나라는 섬서성과 하남성을 차지한 지금의 황하 주변 지역의 영토를 가진 나라였다고 기록한 것이다. ☞ 『사마천 사기(史記) 卷百二十九 「화식열전(貨殖列傳)」』 관중(關中)은 견(汧)과 옹(雍)에서 동쪽으로 황하와 화산(華山)에 이르기까지 기름진 땅과 비옥한 들판이 사방 천 리에 펼쳐져 있다. 그리하여 관중의 땅은 천하(한나라)의 3분의 1에 인구는 10분의 3에 지나지 않지만 그 부유함을 따져보면 10분의 6을 차지하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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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시황의 진나라 북쪽(하북성, 산서성, 오르도스)에는호(胡)로 불리운 고조선인 북부여가 있었다1. 중국인은 염소 수염인데, 구렛나룻 수염 호胡자이니 호胡는 구렛나룻 수염이 있는 고조선 사람을 나타낸 것이다 (1) 정사 삼국지 위서동이전 예조에서 고조선을 호(胡, 구렛나루 수염 호)라고 했다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한4군을 설치하니 이때부터 호(胡, 고조선)과 한(漢,한나라)가 구분되기 시작하였다(自是之後, 胡·漢稍別) (2) 전국시대 고조선은 장단경(대부여) 시대였고 진시황의 진나라 시대 고조선은 해모수의 북부여였고 전한시대 고조선은 동명왕의 졸본부여다 2. 전국시대 연나라와 진시황의 진나라 북쪽인 하북성 중북부와 산서성 중북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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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 영토와 위치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연나라가 북경지역에 있었다는 잘못된 내용이다 연나라가 북경부근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주본기에 소공석을 연(燕)에 봉했는데, 연나라 소공세가에는 북(北)자가 추가되어 북연(北燕)에 봉했다고 했고 추가된 북(北)자를 북경(北京)으로 엉터리 해석을 한 것이다(남연의 실체가 없으니 북연이 아니라 연이다) 하지만 춘추좌전에 따르면 춘추시대 연나라는 하남성 황하 근처 연진현延津县(한나라 동군 연현燕縣)에 있었다 ■ 사마천 사기와 춘추좌전 등 중국 고대 문헌에서 고조선은 무엇인가? 1. 춘추시대 적(狄)과 적(翟)이 고조선이고 융戎은 사막초원 지대에서 말을 타는 말 마자 마한(馬韓)이고 사막 막자 막조선(漠朝鮮->莫朝鮮)이다 1) 춘추시대에는 적狄과 적翟을 혼용해서 사용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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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서기에는 고대 일본(야마토 왜)의 식민지로 임나가 기록되어 있다 1) 『일본서기』 신공황후 49년(AD 369년) 임나 7국을 정벌하여 야마토 왜의 식민지로 삼았다 ※주) 임나 7국 : 비자발(比自㶱), 남가라(南加羅), 녹국(㖨國), 안라(安羅), 다라(多羅), 탁순(卓淳), 가라(加羅) 2) 『일본서기』 계체천왕 6년(AD 512년) 왜의 식민지였던 임나 4현을 백제에게 주었다 ※주) 임나 4현 : 상다리(上哆唎), 하다리(下哆唎), 사타(裟陀), 모루(牟婁) 3) 『일본서기』 흠명기 23년(AD 562년) 신라가 임나의 관가를 쳐서 없앴는데 왜의 식민지였던 임나 10국이 멸망했다고 한다 ※주) 임나 10국 : 가라국(加羅國), 안라국(安羅國), 사이기국(斯二岐國), 다라국(多羅國), 졸마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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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북성 중부의 부양하가 요수이고 하수인 근거는 1) 전국시대 『한비자(BC 280?∼BC 233) 유도』편에계(薊)를 나라로 삼은 연소왕이 하수(河水)를 연나라 경계로 삼았다고 하니 계(薊) 근처에 하수(河水)가 있었다2) 한나라 시대의 『염철론(BC 74~BC 49) 험고』에는연나라가 요수(遼水)에 둘러 쌓였다고 했으니 한비자 유도편의 하수가 염철론 험고의 요수로 추정할 수 있다따라서춘추전국 시대 하수(河水)가 황하 하류의 물길이 바뀌어 한나라 시대 요수(遼水)로 불리운 것으로 보이고춘추전국 시대 하수(河水)가 흘렸던 흔적이 한단시, 형태시와 형수시로 흐르는 지금의 부양하(滏陽河)다결론적으로하북성 남부에서 중부로 태행산맥을 따라 흐르는 지금의 부양하(滏陽河)가 요수입니다부양하가 한나라 시대 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