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려 모본왕이 AD 49년에 한나라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공격한 미스터리 실체는(?) ■ 한나라 태원이 산서성 서남부 임분시인 근거는 한서지리지다. 1) 한서지리지에 태원은 태원군으로 치소가 진양인데 진양은 요임금의 당국으로 표현되어 있으니 도사 유적이 있는 임분시 지역이 한나라 태원군이다 ☞ 『한서지리지 태원군』 태원군은 진시황의 진나라가 설치했고, 치소는 진양인데, 옛 시경의 당국이다 [원문] 漢書地理志 : 太原郡, 秦置, 在晉陽(縣). 晉陽(縣) 故詩唐國. 2) 산서성 서남부 임분시(臨汾市) 지역이 한나라 태원군이 된 이유는 태악산(太嶽山)이 임분시 북동쪽에 있어서 태악산의 근원이라는 의미가 태원(太原)이다 3) 고구려 멸망 후에 즉천무후가 태원부를 지금의 산..
☞ (중국 정사) 삼국지 동이전과 일본서기로 교차검증되는 비류백제(부여) 의려왕(고이왕)의 일본열도 진출 ■ AD 238년 4월에 비류백제인 부여 의려왕(백제 고이왕)이 하북성 창주시를 떠나 한반도 서부지역으로 갔다 백제 제8대 고이왕의 성이 우태의 우씨이고, 사망년도가 AD 286년으로, 진서 동이열전 부여에 나오는 의려왕의 사망년도와 동일하기에 백제 고이왕이 부여(비류백제) 의려왕으로 추정된다 ☞ 『진서 동이열전』부여(비류백제)가 [서진]의 무제 때에는 자주 와서 조공을 바쳤는데 태강 6년(A.D.285)에 이르러 모용외의 습격을 받아 패하여 [부여]왕 의려는 자살하고, 그의 자제들은 옥저로 달아나 목숨을 보전하였다. (의려가 AD 238에 한반도로 갔고, 비류백제/부여는 태자 의라가 다..
☞ 【중국 고대사서, 삼국사기, 일본서기 교차검증을 통한 대륙삼국설의 실체】 ■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하북성 중북부와 산동성 동부 지역에서 건국했다 1) 사마천사기 화식열전과 한서지리지에 연나라 북쪽에 사방 2천리의 부여가 북부여다 북부여를 졸본부여가 이어 받았고, 졸본부여를 고구려가 이어 받았으니 고구려는 하북성 중북부에서 건국되었다 2) 비류와 온조가 고구려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패수와 대수를 건너서 백제를 건국했으니 백제는 한나라 요서군인 하북성 석가장시 남동쪽 지역(대방고지)에서 건국했다 3) 졸본부여왕 첫째딸의 아들인 박혁거세가 예(동예=예맥)인 창해군(지금의 하북성 창주시)를 거쳐서 동예 남쪽의 진한땅(산동성 동부 지역)에서 신라를 건국했다. ■ 가야와 석탈해의 석씨 신라는 한반도 남부..
■ 청나라 학자들이 중국 고대사서 내용으로 위치비정하여 작성한 대청광여도와 대청광여도 기준으로 이름이 부여된 현대 중국 지명으로 우리고대사 위치를 찾은 내용은 사실이 될 수 없다 반도사관 극복과 우리 고대국가 대륙영토를 확인하고 주장하려면중국의 지명위치 주장에 대해 합리적이고 타당하게 반론할 수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내용이 1) 우적도와 대청광여도에 나타나는 산서성 좌권현의 요(遼)와 산서성 태원시 서쪽의 연경산(燕京山).2) 고대 갈석산(碣石山), 요수(遼水)다. ☞ 우적도와 대청광여도의 산서성 요(遼),연경산(燕京山)과 고대 갈석산(碣石山), 요수(遼水)의 실체는? ■ 우적도와 대청광여도에 나오는 산서성의 요(遼, 좌권현)는 요동 요서를 나누는 요수가 아니다1) 산서성 좌권현의 ..
■ 백제 동성왕 모대(牟大)가 신라 지증왕 지대로(智大路, 모대의 대大자) 1) 백제 동성왕은 신라 이찬의 사위이고, 동성왕의 사망년도가 AD 501년으로, 삼국유사에 신라 지증왕이 왕위에 오른 시기와 같습니다. 지증왕의 아들 법흥왕의 이름이 모진(募秦)으로 모(募)와 모(牟)는 음차이니 같은 말인데, 신라 김씨의 정통성 유지를 위해 지증왕의 성씨는 김씨로 기록했다고 봅니다 아들인 법흥왕이 모씨이니 아버지인 지증왕도 모씨여야 합니다삼국사기 신라본기 소지마랍간 "22년(500)〕 여름 4월에 폭풍이 불어 나무가 뽑혔다. 용이 금성정(金城井)에 나타났다. 서울[京都]에 누런 안개가 사방에 가득 끼었다." 는 내용이 백제 동성왕이 신라에 들어왔다는 암시를 나타냅니다 2) 삼국사기에 백제 동성왕이 심복이자 호..
■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구려 수도는 ① BC 37년에 주몽의 졸본성, ② AD 3년에 유리왕의 국내성, ③ AD 209년에 산상왕의 환도성,④ AD 247년에 동천왕의 평양성, ⑤ AD 342년에 고국원왕이 환도성에 거주했고, AD 343년에 고국원왕의 평양동황성(평양 동쪽의 황성),⑥ AD 427년에 장수왕의 평양성, ⑦ AD 586년에 평원왕의 장안성(평양성으로 불림)이다 AD 313년에 낙랑군이 고구려 영토가 되었으니 1) AD 247년의 동천왕 평양성은 위만조선(낙랑군)의 평양이 될 수 없다 2) AD 427년의 장수왕 평양성은 위만조선(낙랑군)의 평양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일까? ■ 장수왕이 평양성으로 천도하고(AD 427년), 북위 사신 이오가 평양성에 도착하여(AD 435년) ..
■ 서울신문 : 전방후원분 시원은 한반도로 밝혀져(한일 시원논란 매듭)[서울신문 기사] :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19941030017001 한일학계/「전방후원분」 시원 논란 매듭◎“나카야마현 한국 적석총서 영향” 밝혀져/「일서 생겨나 한국으로 역류」 주장에 쐐기 한일학계가 신경을 곤두세웠던 전방후원분의 시원문제가 최근 발굴된 일본 나라현(나양현)텐리시 나www.seoul.co.kr 1 기사 주요 내용: [ “나카야마현 고분이 한국 적석총서 영향” 밝혀져/「일서 생겨나 한국으로 역류」 주장에 쐐기]일본 나라현(奈良市) 텐리시(天理市) 나카야마고분(중산대총,中山大塚古墳)이한국의 돌무지무덤(적석총)영향을 받아 축조된 3세기말에서 4세기초에 이르는 시..
■ 사마천사기 조선열전을 면밀히 살펴보면위만조선(낙랑군)이 한반도 평양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사마천사기 조선열전1편) https://blog.naver.com/swings81/2216258824982편) https://blog.naver.com/swings81/221626846644 ■ 사마천사기 조선열전 주요 내용1) 연나라 장수 진개가 진번조선을 공략하고 복속시켰다(진번과 조선이 아님)(연나라 장성/진시황의 만리 장성 남쪽에 요동군이 있었고지금의 만리장성은 명나라 장성이지만.. 진시황의 만리장성 남쪽에 위만조선 낙랑군이 있었다)2) 전국시대 연나라 요동군은 진시황의 진나라 요동군과 요동외요로 나누어짐(요동외요 : 요동군이 돌아다니며 순찰하는 지역)3) 한나라 요동군이 패수를 기준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