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조선 영토와 위치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연나라가 북경지역에 있었다는 잘못된 내용이다 연나라가 북경부근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주본기에 소공석을 연(燕)에 봉했는데, 연나라 소공세가에는 북(北)자가 추가되어 북연(北燕)에 봉했다고 했고 추가된 북(北)자를 북경(北京)으로 엉터리 해석을 한 것이다(남연의 실체가 없으니 북연이 아니라 연이다) 하지만 춘추좌전에 따르면 춘추시대 연나라는 하남성 황하 근처 연진현延津县(한나라 동군 연현燕縣)에 있었다 ■ 사마천 사기와 춘추좌전 등 중국 고대 문헌에서 고조선은 무엇인가? 1. 춘추시대 적(狄)과 적(翟)이 고조선이고 융戎은 사막초원 지대에서 말을 타는 말 마자 마한(馬韓)이고 사막 막자 막조선(漠朝鮮->莫朝鮮)이다 1) 춘추시대에는 적狄과 적翟을 혼용해서 사용했..
■ 일본서기에는 고대 일본(야마토 왜)의 식민지로 임나가 기록되어 있다 1) 『일본서기』 신공황후 49년(AD 369년) 임나 7국을 정벌하여 야마토 왜의 식민지로 삼았다 ※주) 임나 7국 : 비자발(比自㶱), 남가라(南加羅), 녹국(㖨國), 안라(安羅), 다라(多羅), 탁순(卓淳), 가라(加羅) 2) 『일본서기』 계체천왕 6년(AD 512년) 왜의 식민지였던 임나 4현을 백제에게 주었다 ※주) 임나 4현 : 상다리(上哆唎), 하다리(下哆唎), 사타(裟陀), 모루(牟婁) 3) 『일본서기』 흠명기 23년(AD 562년) 신라가 임나의 관가를 쳐서 없앴는데 왜의 식민지였던 임나 10국이 멸망했다고 한다 ※주) 임나 10국 : 가라국(加羅國), 안라국(安羅國), 사이기국(斯二岐國), 다라국(多羅國), 졸마국(..
■ 하북성 중부의 부양하가 요수이고 하수인 근거는 1) 전국시대 『한비자(BC 280?∼BC 233) 유도』편에 계(薊)를 나라로 삼은 연소왕이 하수(河水)를 연나라 경계로 삼았다고 하니 계(薊) 근처에 하수(河水)가 있었다 2) 한나라 시대의 『염철론(BC 74~BC 49) 험고』에는 연나라가 요수(遼水)에 둘러 쌓였다 고 했으니 한비자 유도편의 하수가 염철론 험고의 요수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춘추전국 시대 하수(河水)가 황하 하류의 물길이 바뀌어 한나라 시대 요수(遼水)로 불리운 것으로 보이고 춘추전국 시대 하수(河水)가 흘렸던 흔적이 한단시, 형태시와 형수시로 흐르는 지금의 부양하(滏陽河)다 결론적으로 하북성 남부에서 중부로 태행산맥을 따라 흐르는 지금의 부양하(滏陽河)가 요수입니다 ..
■ 중국 동북공정 결과인 바이두 백과사전을 보면 북한 평양에 안동도호부 표시가 없으니 북한 평양은 고구려 평양성(장안성)이 아니다 1) 북한 평양에 고구려 평양성이 있었다면 동북공정을 홍보하는 바이두 백과의 669년 당나라 지도에 안동도호부 위치를 북한 평양에 표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이두 백과의 669년 당나라 지도에 북한 평양에 안동도호부 표시가 없으니 AD 668 ~ AD 676까지 고구려 평양성에 설치한 안동도호부 위치는 북한 평양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2) 바이두 백과의 741년 당나라 지도에 하북성 진황도시에 안동도호부 위치가 표시되어 있으니 하북성 진황도시가 멸망당시의 고구려 평양성(장안성)이다 (1) 후한서 동이열전에 당 고종의 아들 이현인 장회태자가 고구려 평양성은 동옥저에 있다고 했으니..
■ 삼한(마한 진한 변한)의 위치가 기록된 중국 고대사서는 삼국지 위지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이다 1) 부여 고구려 삼한등 고조선 열국의 위치와 풍습 그리고 지형적인 특성 등을 최초로 기록한 중국 고대 사서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다 2) 정사 삼국지는 서진의 진수(陳壽, AD233 ~ 297)가 작성하고 남조 송나라의 배송지(裴松之, AD375 ~ 451)가 주를 달아 내용을 보충한 역사서이고, 후한서는 남조 송나라의 범엽(范曄, AD 398~445)이 편찬한 역사서다 따라서 정사 삼국지 작성시기가 후한서 작성 시기보다 대략 150년 이상 빠르니 후한서 동이열전은 정사 삼국지 위서 동이전을 참고해서 작성한 것이다 ■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낙랑군이 아니라 (위만)조선의 위치가 나오니 기원전 2세기(BC 19..
■ 사마천사기 평준서와 한서 식화지에 따르면 동이족 예(동예)의 임금 남여가 항복해서 한무제가 창해군을 설치한 위치가 연제지간(燕齊之間)이라고 했다 ※주) ① 동예의 위치가 연제지간(燕齊之間)이란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에 있다는 의미이니 연나라 도성(서울)과 제나라 도성(서울) 중간 지역이라는 의미다 ② 동예(東濊)는 후한서 동이열전과 삼국지 위서동이전의 예(濊)인데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이 동예(東濊, 동이족의 예)라고 했다 ■ 동예(東濊)인 예(濊,薉)의 위치는 강원도 강릉지역(강원도 북부 ~ 함경도 남부지역)이 아니라 제나라와 연나라 사이인 연제지간(燕齊之間)이다(사마천 사기 평준서와 한서 식화지 내용) 1) 후한서 동이열전에 따르면 예(濊)의 임금 남여가 항복해서 창해군(蒼海郡)을 설치했는데 수년후에 ..
■ 고구려 시대 요수(遼水)는 만주 지역에 흐르는 지금의 요하(遼河)가 아니다 1) 구당서/신당서에 고구려와 관련해서 요수(遼水)가 여러번 나오고, 구오대사와 원사 내용에 나오는 요수(遼水)는 고구려 설명하는 요수로 고려시대의 요수가 아니다 중국 정사에서 요하(遼河)가 처음 나오는 문헌은 1927년에 완성된 청사고다 2) 삼국사기에 요수(遼水)가 나오며, 고려사(1310년 충숙왕)에 등장하는 원나라 황제의 조서 내용의 요수(遼水)는 원나라 영토에 있었던 요수다 요하(遼河)는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고, 고려 초 중기에도 요하가 나타나지 않다가 고려말에 요하가 처음 나온다 ※주) 고려사는 세종대왕 때인 1451년에 완성된 고려시대 역사서로 1370년 공민왕 때의 원나라와 고려 국경선을 설명하는 요하(遼河)로..
■ 『한비자』와 『염철론』에 따르면 전국시대 하수(河水)가 한나라 시대 요수(遼水)이며, 현재의 부양하(滏陽河)다 ※주) 고대 중국에서는 황하를 하수(河水)라고 했다(특히 낙양부터 황하 하류는 물길이 크게 여러번 바뀌었다) 1) 전국시대 『한비자(BC 280?∼BC 233) 유도』편에 계(薊)를 나라로 삼은 연소왕이 하수(河水)를 연나라 경계로 삼았다고 하니 계(薊) 근처에 하수(河水)가 있었다 2) 한나라 시대의 『염철론(BC 74~BC 49) 험고』에는 연나라가 요수(遼水)에 둘러 쌓였다고 했다 따라서 춘추전국 시대 하수(河水)가 황하 하류의 물길이 바뀌어 한나라 시대 요수(遼水)로 불리웠다고 봐야 한다. 춘추전국 시대 하수(河水)가 흘렸던 흔적이 한단시, 형태시와 형수시로 흐르는 지금의 부양하(滏陽..